하나님께서 흙에서 사람의 몸을 창조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호흡을 하게 하되 생령이 되게 하셨다고 창2:7에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동물에는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이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동물이란 것은 활동을 하게 하되 영의 활동이 없는 활동을 하도록 해서 단지 공기와 물을 통하여 움직이는 것 뿐이요 사람은 공기와 물을 초월한 생명을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도 이 땅에서 공기와 물을 통하지 않고는 육의 생명을 보존할 수가 없는 것이로되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결합된 활동을 하는 것이 인생의 가치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은 살되 아무런 발전이 없이 움직이는 것 뿐이요 사람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발전할 기능을 준 것은 하나님 자체가 완전이신 동시에 사람에게도 완전을 주는 것은 사람을 창조할 때 완전케 한 것이 아니고 완전할 수 있는 영과 육을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은 죽으면 없어지고 마는 것이며 사람은 몸은 부활하고 영도 하나님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니 동물의 몸과 사람의 몸은 그 생명이 같지 않고 다르다. 사람의 몸에는 얼마든지 영생할 수 있는 몸이 되게 하는데는 아무런 식물이 없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영생과를 먹으므로 육의 생명이 영생을 하며 그 몸으로 모든 영광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생과라는 것은 몸에 해당되는 것이며 영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은 영생과를 먹기 전에 성령의 역사 아래서 얼마든지 발전해서 그 영이 완전하도록 해주는 것이며 육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날마다 거룩한 생활에 들어가도록 역사해 주시므로 그 몸이 영생과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아담, 하와는 성령을 받지 못했으므로 영생과를 따먹을 영생할 인격을 못 이루었지만 예수의 피로 산 백성은 살아서 영생과를 따먹을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는 것을 기독교 종말에 완전 역사란 것입니다. 사람이 영광을 누리는 것은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결합되는 생활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 사랑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