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류

by 보아오 posted Aug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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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통해 보여지는 명분들이 핑계하기 딱 좋은 시대이다. 살기가 힘들다. 경제가 어렵다. 날씨가 너무 덥다. 사람들의 삶은 왜 저 모양인가?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 등 등

 

 이런 상황을 정리해줄 누군가도 딱히 보이지 않고 막막하게 보이는게 현실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만 그런게 아니다. 수천년 전에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던 육적이스라엘이 그랬었고, 더더우기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함을 받았던 선지자들의 눈에도 똑 같은 상황이 목도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이 확연히 보여졌다. 물론 그 비율은 9999999:1 정도였다. 대다수를 차지했던 한 부류는 그런 상황에 속절없이 휩쓸려 갔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삶 속에서도 결코 놓지 않고 목숨처럼 질기게 붙들고 있었던 것이 그들의 `신``우상`이었다.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시간이 가까울수록 우상의 수는 늘어가고 우상숭배의 강도가 더해가다 결국 자기 태의 열매까지도 불에 던졌다. 그러다 하나님의 경고가 현실이 될 때 자기 태의 열매를 삶아 먹기도 하였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땅에서 같은 상황을 목도했던 한 부류가 있었다. 그들은 당시의 육적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지금의 그리스도인들과 성정이 다른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므로 하늘아버지의 마음이 그들에게 임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패괴한 상황을, 타락한 본성을 지닌 인생의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 하늘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런 상황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울기만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으므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렘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경고하고 울었던 말씀이 선지서로 기록되었다. 선지자들의 경고대로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다. 그 역사가 인간종말의 예언이 된 것이다.

 

 영적 유대인된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바벨에게 이미 상당히 먹혀 있고, 이제 완전한 멸망을 앞에 두고 있는 때에 선지서를 기록했던 선지자들의 심정이 임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보여지는 현실의 무거움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시간만 허송하다 바벨에게 완전히 먹힘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선지자들 처럼 들어주는 이 없고, 알아주는 이 없더라도 여호와만을 바라보고 깨어 준비하여  만유를 회복하시는 여호와새일의 역사에 쓰임을 받을 것인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