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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때 영화롭게 되는 자
 ( 시 91 : 1 - 16 ) 
 
서 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환난이 없음으로가 아니고 어려운 환난이 부딪쳐 올 때에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완전하고도 공의로운 신이시니 환난이 오게 하는 동시에 여기서 의로운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을 당해 보아야 하나님은 당신이 영화롭게 하는 인격을 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환난 중에 영화롭게 할 인격은 어떠한 자라는 것을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1.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통하는 자이다 (시91:1) 
하나님은 평안할 때 은밀한 곳을 살핀다. 은밀한 곳을 살필 때는 잠잠히 계셔서 고요히 숨어 계신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 은밀한 곳에서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한다고 한 것이다(계2:23). 지금은 하나님은 고요히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를 살피고 있지만 환난이 올 때는 누가 은밀한 곳에 계신 하나님과 사귀었느냐 하는 문제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다 (2) 
하나님은 어느 정도까지 당신을 의뢰하는가를 달아보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 같으나 어려운 일이 올 때 의뢰하는 힘이 약하다면 영화롭게 될 수 없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영화롭게 된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힘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천인 만인이 쓰러지는 염병과 재앙이 와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다고 한 것이다(3-10). 
 
3.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이다 (14) 
우리는 하나님을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영화롭게 되고 못되는 것이 달려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있으면서도 부분 적에 불과하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건져 주는 정도에까지 사랑하는 자라야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사랑할 때 건져 주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다 (14) 
이 안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증거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높여 주리만큼 안다는 정도가 무엇이냐 라는 것을 양심적으로서 판단할 일이다. 하나님은 양심을 보고 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니 조금도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는 일이 없고 날마다 일구월심의 양심 속에서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여기에서 움직이는 자라면 이 사람은 하나님이 높여 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위신을 높이려고 하는 중심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진실한 체 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악자의 행동일 것이다. 바리새 교인의 행동이 즉 그것이었던 것이다. 
 
5. 간구하는 사람이다 (15) 
이 간구는 사생을 결단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되면 되고라는 그 정도가 아니라 “꼭 안되면 나는 죽는 일이다” 라는 각오를 가지고 올리는 기도가 간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영화롭게 해주는 인격이 아니고는 환난 가운데 남을 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환난은 종말에 오는 환난을 말한 것이니 이 환난에서 영화롭게 된 자는 장수함으로 만족하게 되리라고 말한 이것은 육체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영화 중에도 큰 영화는 종말에 환난 가운데 남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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