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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의 활동
 
  총 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활동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할 것을 증거하시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의 활동은 40일간 세상에 나타나서 부활을 증거할 사명자들에게 완전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셔서 이루어진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것을 세계 만방에 증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활동하셨으니 이것을 공부하기로 한다.
 







제1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난 일
- 요 20:11~18,  요절:17 -
 
 서 론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서 말씀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로 가장 간절한 소원을 먼저 풀어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예수의 부활을 믿고서 예수를 만나 보려고 간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시체라도 한번 만져 보고 귀한 향품을 발라 드리겠다는 목적에서였다(눅24:1, 막16:1). 그러므로 그에게 먼저 나타난 것이다.

  둘째는 겸손을 보여준 것이다. 아무리 거룩한 몸으로 부활했지만 겸손하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여자에게 나타난 것은 조금도 남녀의 차별이나 귀천의 차별을 두지 않고 역사한다는 증거이다.
  셋째로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씀한 진리에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대지 :“마리아야” 하고 부르심 (11~16)
  여기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택한 자를 먼저 부르셨는데 먼저 부르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인간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바로 알도록 하자는 목적이요,
  둘째로 “내가 너를 잊을 수 없다”는 뜻이요,
  셋째는 “네가 나를 믿으라” 하는 뜻이다.

  이 때에 주님께서 마리아를 부르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예수를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낙심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아무리 간절한 마음이 있다 하여도 주님이 찾아오는 역사가 없다면 아무 것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주님이 3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했는데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부활하신 주님이 옆에 서서 계시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지금도 주님은 택한 자를 찾아오고 부르시는 일이 있음으로서만 바로 깨달아 믿게 되는 것이다.
 
  2대지 : 나를 만지지 말라고 하심 (17상반절)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하신 것은 부활하신 후에 누가 먼저 감히 그 귀한 몸을 만질 수 없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만 왕의 왕으로 축복하신 다음에 주님을 만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영체의 몸이니 보좌 앞에 갔다 오는 것이 공간에 제한이 없이 자유로 왕래할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했다는 것만 알게 해주고 아버지께 갔다 오는 기간은 여러 날 걸린 것이 아니고 저녁 때 제자들을 찾아가서 손을 내밀어 “나를 만져 보고 의심 말고 믿으라” 했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그 몸이 하나님께 가서 모든 일을 다 결정하고 내려온 기간은 불과 몇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지만 그 여자에게 나를 만져 보라고 한 말씀은 없었다. 왜냐하면 부활을 증거할 사명이 사도들에게 있기 때문에 친히 만져 보아야만 될 사람이므로 만져 보고 증거하도록 했지만, 여자는 부활을 증거할 대표적인 사람이 아니므로 그 몸을 만져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3대지 : 너는 내 형제들에게 전하라 하심 (17하반절~18)
  주님께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중생을 받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을 사람인데 예수의 부활의 생명을 받아 다시 살았으니 이는 예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예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요, 예수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의로 살았으니 중생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의의 열매이므로 얼마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로 중생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얼마든지 아들의 영인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 되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생명의 일체적인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결 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일곱 마귀가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은 예수의 부활은 이러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부활이라는 것을 뜻했고(막16:9), 누구든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뜻했으며 여자는 남자들의 사명을 도와주라는 뜻에서 속히 이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하여 주라고 부탁한 것이다.
 
 




제2과  길을 가시면서 성경을 가르치심
- 눅 24:13~31,  요절:17 -
 
 서 론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에도 노방 전도를 많이 하시었고 부활하신 후에도 길을 걸어가시면서 성경을 가르치셨다. 그러면 길을 가는 도중에서 성경을 가르친 데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1대지 : 슬픔 중에 길을 가는 제자를 찾아오심 (13~17)
  인생이라는 것은 아무리 믿는다 하여도 항상 믿음이 부족한 것 뿐 이요,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비관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인간의 약점을 아심으로 불쌍히 여기시고 알지 못하는 사람을 깨닫도록 해 주는데 있어서 친히 찾아 오셔서 동행을 하시며 깨닫도록 가르쳐 주셨다. 부활하신 주님이 겸손하게도 두 제자를 찾아 오셔서 동행하시게 되었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므로 마음에 낙심을 하고 있는 자들에게 그들을 바로 깨닫게 할 책임이 있으므로 찾아 오셔서 깨닫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2대지 : 성경을 자세히 설명하심 (18~27)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실패로 생각한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로 말씀과 하신 일이 능하신 선지자로서 죽었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 둘째로 이스라엘에 국한된 구속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고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을 뿐 그밖에는 더 믿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여자들의 말을 듣고도 부활을 확신하지 아니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들을 예수님은 깨우치실 때에 “미련하고 선지의 말을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러한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었다.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깨닫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이루어진 일도 깨닫게 해 주므로써 만 깨달았던 것이니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스스로 알 자는 전혀 없다. 성경은 이루어진 일이나 이루어질 일이나 다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는 전혀 없다. 이날까지 기독교에서 성경을 깨달은 것은 이루어진 일을 깨달은 것이다.
 
  3대지 : 떡을 가지사 축사하심 (28~31)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떡을 놓고 축사하시었다. 이것을 본다면 식탁을 대할 때에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 앞에 축복을 받을 적에 눈이 밝아져서 주님인 줄 깨닫게 되었다. 성경 말씀을 들을 적에는 마음이 뜨거워졌고 축복을 받을 적에는 눈이 밝아진 것이다.
 
 결 론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서만 성경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고, 완전한 믿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승리와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완전한 지식과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친히 제자를 찾아다니시면서 성경을 가르치신 것은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줄 책임이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있으므로 제자들이 주님을 찾아가 배운 것이 아니고, 주님이 친히 찾아 오셔서 부활을 믿게 하셨으며 또 성경을 깨닫도록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사람을 들어 쓸 적에 진리를 바로 깨닫도록 하는 데까지 목적을 두고 친히 활동하신 것이다.
 




 
제3과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전파할 것을 알려 주심
- 눅 24:36~49,  요절:47 -
 
 서 론
  주님께서 사명을 맡긴 다음에는 그 사명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 앞에 사람을 대신 세울 때에 똑똑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세운다면 오히려 세우지 않는 것만도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당신 앞에 증인을 세울 때에 확실한 것이 없게 세운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완전히 깨닫게 하고 직접 증거를 보여 주시고 세우시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확증을 세웠던 것이다.
 
  1대지 : 부활한 몸에 대하여 확증을 세움 (36~43)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은 주님이 나타났는데도 영으로 생각을 할 때에 예수님은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며 만져 보라고 하시었다. 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시었다. 이렇게까지 하신 것은 대표적인 사람으로 세우기 위한 목적에서 확증을 보여 준 것이다.
  주님은 대표적인 사도들이 보고 만진 바를 우리가 보고 만진 것과 같이 믿어야만 속죄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의심한다면 증거한 사도들을 거짓 선지로 아는 것이니 기독교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의 증거를 그대로 믿을 때에 주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2대지 :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심 (44~47)
  성경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는 것은 성경 말씀이 이루어진 증거를 분명히 알도록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리 주님의 부활이 있다 하여도 성경이 이루어진 것이 확실치 않았으면 만민 앞에 합법적인 증거라고 볼 수 없다. 모든 예언이 확실히 이루어진 일이 있음으로써만 모든 민족에게 전파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을 증거하는 기독교가 성경에 맞지 않는다면 이것은 완전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는 동시에 성경을 분명히 알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다.
 
  3대지 :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므로 (48~49)
  아무리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었고 성경을 가르쳐 주었다 하여도 성신의 능력을 나리는 역사가 없다면 모든 족속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 운동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증인이 될 사도들에게 부활한 몸을 보여주고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고 성신의 능력을 부어 주므로써 완전한 증인의 역사를 하게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신의 역사라는 것은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도록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택한 자를 믿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속죄를 받은 것은 사도들에게 주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증거이다.
 
 결 론
  사람이 예수를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는 일은 너무나 큰 일일 뿐 아니라 너무나 오묘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성신이 깨닫게 해 주므로 이 진리를 분명히 증거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합법적인 진리인 동시에 증거가 있고 증거가 있는 동시에 믿는 자로 하여금 완전이라는 것을 소유하게 된다.
 


 


제4과  시몬과 요한의 사명을 말씀하심
- 요 21:15~23,  요절:19 -
 
 서 론
  많은 제자가 있지만 주님은 시몬과 요한을 대표로 세웠다고 본다. 사명적인 이름을 줄 때에도 시몬과 요한에게만 시몬을 ‘베드로’라고 이름을 주셨고 요한은 ‘보아너게’라고 이름을 주시었다(막3:16~17). 베드로라는 뜻은 ‘반석’이란 뜻이요, 보아너게라는 뜻은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몬과 요한의 사명을 말씀한 것을 공부한다.
 
  1대지 : 시몬의 사명을 말씀함 (15~19)
  요한은 십자가 앞에서 주님 대신 아들이라는 사명을 맡았지만, 시몬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일이 있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씩이나 거듭 물어 볼 때에 베드로는 자기 실수가 있으므로 제자들 앞에서 이 사람들 보다 내가 더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는 말밖에는 아무 말을 더 할 수 없었다. 주님은 시몬의 사명을 말씀하실 때에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베드로의 사명은 은혜시대의 총 책임을 맡은 대표적인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어느 제자보다도 실수가 있었지만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신과 같이 쓰여지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은혜시대의 사명이라는 것은 그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는 사명이다. 다시 말하면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마귀의 흑암에서 생명의 빛을 따라나가도록 증거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베드로의 계통을 따라 양을 먹이는 사명을 하는 자는 중생의 역사가 나리었던 것이다.
  한 번 설교할 적에 3천명이 중생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대표적으로 쓰는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성신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비겁한 사람이었지만, 성신을 받았을 적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기까지 싸워 나갔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명을 말할 때에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를 띠우고 원치 아니한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한 대로 된 것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실수가 있다 하여도 그 소원대로 역사를 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주를 위하여 죽어도 배반치 않는다고 장담하고는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했지만 성신 권능을 주어서 그 소원대로 죽어도 배반치 않고 증거하게 했던 것이다.
 
  2대지 : 요한의 사명을 말씀함 (20~23)
  베드로는 요한을 향하여 그 사명을 물어 보았던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었다. 이것은 요한의 사명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가서 진리 운동이 일어나되 요한을 통하여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후에 베드로는 네로 황제 박해 때 주님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요한은 남은 자가 되어서 밧모 섬에서 계시록을 받았다. 이 계시록은 읽고 듣고 지켜야 될 예언의 복음이다. 이 진리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 운동이 아니고, 온 세계가 불로 소멸되는 환란 속에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에 들어가는 복음이다(계10:7, 14:6).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베드로에게는 천국 열쇠의 진리를 주어서 세계 민족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했고, 요한에게는 다시 예언의 말씀인 다림줄의 진리를 계시로 주어 주님 재림시에 계시록 10장 11장과 같이 역사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계시록의 다른 천사의 역사는 요한의 받은 계시록을 통하여 일어날 기독교 종말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날까지는 계시록을 봉한 책으로 두었지만 이 책을 열어 증거할 때에는 계22:10이하와 같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 복음은 이방의 빛이 되는 역사요, 사9:1~2, 42:6과 같이 역사한 것이다. 그러나 온 세계가 흑암으로 들어가는 대환란이 날 때에 빛이 되는 말씀은 다시 예언의 등불을 들고 주님을 맞이하는 빛이 될 것이니 이것이 계시록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붉은 용의 앞잡이 거짓 선지의 미혹을 이기는 것은 선지서로써 이기며 계시록을 전하는 동시에 선지서를 통하여 큰 변론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변론은 여호와의 변론이니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을 증거하는 변론이다.
 
 결 론
  우리는 베드로의 전하는 복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은 자로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재앙의 날에는 다시 사도 요한의 사명인 계시록을 전할 수 있는 권세의 종으로 역사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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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청수복 2022.04.01 05:40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서만 성경을 분명히 깨닫게 되고, 완전한 믿음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승리와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완전한 지식과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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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청수복 2022.04.01 21:22
    우리는 베드로의 전하는 복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은 자로서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재앙의 날에는 다시 사도 요한의 사명인 계시록을 전할 수 있는 권세의 종으로 역사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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