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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룬의 검
2021.03.10 17:05

서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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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상 지금처럼 사랑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사용된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해 예언하시면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가 사랑이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시대라는 사실과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올바른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올바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는 말씀에서부터 사랑의 개념을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시는 분이 아니고,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요일4).

 

요한일서 411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같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이 시대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남녀 간의 사랑, 부모자녀 간의 사랑, 성도들 간의 사랑에 있어서 성경적인 지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지 못한다면, 남녀 간의 사랑은 음란으로, 부모자녀간의 사랑은 방종으로, 성도들 간의 사랑은 이방인과 다름없는 사교적인 것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리를 깨닫는다면 우리가 해야할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순종한 십자가입니다.

빌립보서 28절은 예수님께서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죄를 사해주고자 하시는데 아무 대가 없이 죄를 사해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인들을 용서해주는 대가로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죄사함과 용서를 베풀어주고자 하신 하나님의 법에 철저히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인용한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많지만 하나님의 법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법과 말씀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두번째, 남을 살리기 위한 십자가입니다.

요한일서 49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죄악 가운데 파묻혀 사망으로 곤두박질치는 인간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살리기 위한 십자가에는 생명을 바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남을 살리기 위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한 사랑, 상대방이 죽을 길로 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사랑, 희생하기 싫어하는 사랑을 합니다. 남녀 간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성도들 사이에도 이와 같은 변질된 사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아들을 내어주셨고,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셨다는 것을 잊지 않고, 남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사랑을 해야합니다.

 

세번째, 죄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610절은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죄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죄에 대하여 죽고,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고, 몸의 사욕을 순종하지 않고, 그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철저히 죄가 미워서,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죄와 싸우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지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죄악을 용납하지 않고 죄와 싸우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죄를 용납하는 사랑을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자칫 십자가의 사랑이 흐려지면 죄를 그대로 용납하기 마련입니다. 남녀 간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성도들끼리도 사랑은 반드시 죄를 용납하지 않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에게 먼저 찾아가셨지만 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사랑이 변질되고 왜곡된 이 시대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그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십자가 위에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남을 살리기 위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죄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십자가였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철저히 하나님의 법에 순종한 사랑, 남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사랑, 죄악을 용납하지 않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417절은 우리가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올바른 사랑을 해야하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십자가를 닮은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다면 우리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심판을 피하고 담대히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천년왕국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올바른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주의 어떠하심을 닮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의미를 십자가를 통하여 다시 되새겨서, 남녀 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성도들 간에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섬네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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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지기 2021.03.11 16:07
    사랑은 자신을 비워야 보인다
    사랑은 낮아질 때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은 소명이며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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