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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룬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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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사야를 읽다가 덮으신 이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이후에 나사렛에 가셨습니다.

그곳 회당에 들어가셔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이 일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61장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읽으신 구절은 이렇습니다.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여기까지만 읽으시고 책을 덮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61장의 내용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라고 기록되면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왜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는 구절까지만 읽고 이사야 성경을 덮으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2000년 전에 초림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었고,

신원 즉 복수와 심판의 날을 전파하는 것은 마지막 재림 때 행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5 32절이나 요한복음 1247절 말씀처럼, 2000여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의인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구원하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는지는 복음서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로운 기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248절의 말씀처럼, 마지막 날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받지 아니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사명을 맡았던 사도들, 즉 지난 영상에서 설명한대로 베드로의 사명을 맡았던 사도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충실히 전함과 동시에 심판에 대해서도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심판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심판이 어디 있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을 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아들을 직접 이 땅에 보내어 죄인된 인생을 위해 대신 죽도록 하시는 사랑을 보여주셨고,

그 사랑을 믿고 그 말씀을 받을만한 기간을 충분히 주셨고,

하나님의 종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하는 와중에도 길이 참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핑계할 수 없을 만큼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무고한 피를 흘리는 것을 언제까지나 가만히 방관하는 것이 사랑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복수하고 갚아주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입니다.

처음에 살펴보았던 이사야 61장에서도 신원, 즉 복수가 슬픈 자들을 위로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심판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순종했던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상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에서는 심판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 성경을 읽으시다가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하심이라에서 더 읽지 않고 덮으셨습니다.

초림 예수님의 사명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나오는 구절인 신원과 심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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