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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대의 진실

 김원봉을 추켜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대한민국을 두 동강 냈다. 대통령은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참여한 것을 강조하면서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몰랐을까. 조선의용대가 6·25 남침 때 동원된 북한 '인민군의 뿌리'라는 사실을.

조선의용대 후신인 조선의용군은 6·25 직전 북한에 들어가 인민군 전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조선의용군 입북(入北)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 전쟁 도발 결심과 전쟁 승리의 확신을 심어준 결정적 요인'이 됐다(장준익 '북한인민군대사' 470쪽). 평양방어사령관을 맡은 무정을 비롯해 5사단장 김창덕, 6사단장 방호산, 12사단장 전우 등 인민군 장성 50% 정도가 조선의용군 출신이었다(안문석 '무정평전' 237쪽). 6·25 새벽 남침(南侵)한 연대 21곳 중 47%인 10곳이 조선의용군 출신이었다(김중생 '조선의용군의 밀입북과 6·25전쟁' 273쪽). 조금만 뒤져보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용대의 80% 이상이 조선의용군으로

조선의용대(대장 김원봉)는 1938년 10월 10일 중국 무한에서 창설됐다. 대원은 100명 안팎이었다. 중국 장제스 정부의 지원과 지휘를 받는 조선의용대는 전투 부대가 아니라 무장한 정치 선전대였다.

1941년 7월 조선의용대 병력 80% 이상이 화북(華北)의 중국 공산당 팔로군 근거지로 이동했다. 김원봉이 장제스 정부 지원을 받는 데 반발한 반대 세력들이 뛰쳐나온 것이다. 김원봉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광복군에 합류했다. 중국 공산당 근거지 연안으로 들어간 조선의용대는 1942년 7월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한다. 장정에 참여한 중국 공산당원이자 팔로군 포병 사령관 무정(武亭)이 사령관을 맡았다. 조선의용군은 독립운동 일환으로 항일 전쟁에 나섰다.

중국 공산당은 1945년 8월 11일 조선의용군을 만주에 진격시켰다. 일본어를 아는 조선인 부대가 일본군을 상대하기 쉽고 100만명 넘는 만주의 조선인을 포섭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을 높이 샀다. 1945년 11월 만주에 진군한 조선의용군 2000명은 1, 3, 5, 7지대로 나눠 각지로 퍼졌다. 조선의용군은 현지 조선인 청년들을 충원하면서 인민해방군 제166사단과 제164사단, 독립 15사단으로 확대 개편됐다.

◇북 사단 10곳 중 세 곳이 조선의용군

중국 인민해방군 166사단(1만321명)과 164사단(1만821명)은 1949년 7월 북한으로 이동해 인민군 6사단과 5사단으로 개편됐다. 1950년 4월 독립 15사단(1만4000명)은 인민군 12사단으로 모습을 바꿨다(염인호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 351쪽). 육사 교장, 5군단장을 지낸 장준익씨는 개전 당시 인민군 보병 사단 10곳 중 3곳이 조선의용군(5만명)으로 풍부한 전투 경험을 갖춘 강군(强軍)이었다고 평가했다.

북한 인민군 주력이 된 조선의용대 사진

6·25전쟁 기획과 지휘는 김일성과 최용건이 이끄는 만주파가 주도했다. 조선의용군은 군단장부터 사병까지 숫자는 많았지만, 최고 지휘부엔 거의 진입하지 못했다. 김일성파의 견제 때문이었다. 1950년 10월 평양방어사령관을 맡은 무정은 김일성으로부터 패전 책임을 추궁당한 끝에 숙청됐다. 조선의용군 출신 간부들도 1956년 연안파 숙청 때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조선의용군 출신이자 인민군으로 참전한 김중생씨는 '6·25전쟁 참전은 김일성의 무력 통일 전략에 이용당한 것으로 조선의용군의 불명예'였다고 썼다. 대통령은 6·25 호국 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에 무슨 생각으로 조선의용대를 불러냈을까.

김원봉 '北국방장관 역할' 기록 나와… "민족 지도자 김일성, 리승만 력도" 연설
1948년 '국가검열상(국방상)' 보도, 北노동신문 등에는 경력 확인안돼

1948년 북한 김일성 정부 수립 때 국가검열상에 올랐던 김원봉이 초대 국방상(국방부 장관) 역할도 맡았다는 기록이 13일 다수 발견됐다. 국방상은 군사행정을 총괄하는 역할이어서 김원봉이 6·25 이전부터 남침 준비에 깊이 관여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948년 9월 11일 발행된 조선일보·동아일보·경향신문은 '북한이 9월 9일 초대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수상에 김일성을 만장일치로 추대하고 '조각(組閣) 명단'을 발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원봉의 직위를 '국가검열상(국방상)'으로 보도했다. 김원봉의 개인 비서였던 중국인 사마로는 자서전 '투쟁 18년'(1951)에서 "김약산(김원봉)은 북한 정부에서도 국무위원 겸 검열부장(중국의 군정부장, 군사행정을 전문적으로 관할함)이라는 자리를 얻었다"고 썼다. 1953년 작성된 미군 기밀문서도 '김원봉은 북한 정권 초반 국방상(Minister of National Defense)이었다'고 기록했다.

국사편찬위 관계자는 "국가검열상이 군부 업무에도 관여했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노동신문과 조선중앙연감(1950) 등에서 김원봉의 '국방상' 경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김원봉이 임시정부 '군무(軍務)부장'을 맡았기 때문에 북한 정권에서도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948년 스스로 월북한 김원봉은 같은 해 초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됐고, 북 헌법 수립 과정에 참여했다. 북 제헌의회 멤버로 활동한 것이다. 그는 6·25가 한창이던 1952년 노동상으로 자리를 옮겨 전쟁 물자와 인력을 공급했다. 또 전쟁 전후 간첩을 교육해 남파하는 역할도 맡았다.

김원봉이 김일성과 스탈린을 '위대한 영도자'로 칭송하고 남한 정부와 미군을 비판한 발언도 다수 확인됐다. 1948년 최고인민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김원봉은 "경애하는 우리 민족의 영명한 지도자 김일성 수상의 주위에 더욱 굳게 단결하자"며 거듭 찬양했다. 이어 "위대한 쓰딸린 대원수가 령도하는 위대한 선진국가 쏘련의 진정한 원조를 받음으로써 미 제국주의의 침략 정책을 분쇄하자"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선 "조선 인민들을 자기들의 영구한 노예로 만들려는 미제와 리승만 력도들"이라고 했다.

지시만 해놓고 발빼버린 청와대… 국방부·보훈처는 "어쩌나" 혼란
'김원봉 서훈·복권' 추진했는데 논란일자 靑은 "서훈 계획없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직간접적인 '청와대 지시'에 따라 서훈까지 염두에 둔 '김원봉 복권(復權)'을 진행해왔다. 국방부는 지난 2017년 8월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운동사 발굴 및 활용'이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독립군 관련 연구를 추진하고 김원봉의 이름을 '창군(創軍)' 역사에 포함하는 작업을 했다. 작년에 이미 이와 같은 작업을 마무리했고, 이제는 김원봉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창군 역사에 담는 일만 남았다.

보훈처는 작년부터 국민중심보훈혁신위원회를 중심으로 '김원봉 서훈 작전'을 세웠다. 이 위원회 인사들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과 본인들의 유대 관계를 과시하고, 일을 추진할 때 "청와대의 의중"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처는 이에 따라 김원봉 서훈과 관련된 법률 검토도 비밀리에 했고, 김원봉 관련 세미나까지 열었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김원봉 서훈'에 나선 이유는 김원봉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영화 '암살'을 관람한 뒤 페이스북에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 독립 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그전부터 김원봉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각종 역사 서적을 통해서 김원봉을 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국군의 뿌리'라는 자신의 현충일 추념사가 논란을 일으키자 "통합을 강조하고자 한 말이었는데 대체 왜 김원봉 서훈 논란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주변에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청와대는 "김원봉 서훈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동안 '김원봉 서훈 작전'을 해 왔던 일선 부처들은 그 같은 청와대 반응에 의아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김원봉 서훈 대국민 서명운동'을 추진하기로 했던 일부 독립운동 단체도 서명운동 계획을 철회했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 의중이라며 여러 일을 추진해왔는데 혼란스럽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마 일시적 후퇴일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3/20190613035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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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아오 2019.06.14 12:29
    백성이 무지하고 거짓되면 지도자도 무지하고 거짓된 지도자를 뽑아 함께 멸망의 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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