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가 뭘 할까요?_ 도서 후기

by 정진영 posted Mar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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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가 뭘 할까요? / 지은이 조성환 / 펴낸곳 규장 / 2016년




 저자는 감리교 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충북 제천 빛샘 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웨슬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목회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워싱턴 DC에 교회를 개척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현재는 워싱턴 DC에서 유일한 한인 교회인 알파 커뮤니티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저자는 도서에서,


 살아가면서 지나칠 수 없는 삶의 질문들에 대해 묵상하고,


 육신의 선택이 아닌, 영적인 실마리를 찾아 나서는 삶과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정말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필요를 갈급해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볼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 또한,


 한국에서의 생활,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과 한인 교회 목회를 하면서,


 때때로 이러한 질문과 마주하고, 진지하게 고민하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유학 생활과 목회 생활을 할 때에,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가라지 비유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집 주인이 밭에 씨를 뿌렸는데,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지와 좋은 곡식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종들은 주인에게 가라지를 당장 뽑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여,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고, 추수 때에 가서,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언가 당장 결과를 원하지만,


 때로 한 박자 늦은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이 지연되는 것입니다.


 적재적소에서 딱 맞는 인생의 대답을 들려주시기를 원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답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 그냥 내 맘대로 하는 것은 좋은 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영적 실마리리가 중요하며,


 영적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영적 힌트를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탄생의 이야기에는 동방박사가 등장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왕의 별을 따라 길을 떠납니다.


 저자는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별이 움직였는데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은 왜 그 별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일종의 천문학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늘만 쳐다보고 연구하다 보니, 작은 움직임도 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만 보고 충실히 따라갔습니다.




 한편,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에게,


 어디에서 왕이 나는지 알려 달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실마리를 찾고, 그 실마리를 따라서 '아기 예수'를 발견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남에게 실마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헤롯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세상의 관점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모두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자녀가 없었다 라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눅1:6-7)


 한글 성경에는 이 두 구절 사이에 아무런 접속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에는 번역본에 따라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6절이 끝나고, 7절이 시작하는 구절 사이에,


 번역본에 따라서, 'but' (하지만) 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and' (그리고) 로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를 해석하면,


 'but' (하지만) : 그들은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식이 없었다.
 'and' (그리고) : 그들은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식이 없었다.


 (참고로, 원래의 헬라어 본문에는 '그리고'로 되어 있음.)


 '하지만'과 '그리고'의 차이는 큽니다.




 근대 이전에는, 가족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서 다산은 중요한 복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많은 자녀를 생산한다는 것은 가족의 축복이며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위의 본문에서, '하지만' 이라는 단어는 마치 이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지만, 아이는 가질 수는 없었구나, 불쌍해라'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기면 뭘 해, 자녀가 없잖아, 도대체 뭘 잘못해서 그런 거야?'
 


 '신실한데 아이가 없다' 라는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충고를 던져 줍니다.


 삶의 신실함과 우리의 인생 문제가 단순히 인과관계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지,


 자신의 공로와 의로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열심히 믿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천사가 말합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믿는 자에게 이렇게 기쁜 소식,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실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없었다' 라고 주관적인 판단을 쉽게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데도,


 문제가 함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삶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의와 신실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