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설교

[상위메뉴][40~66장]

 

목 차 ( 1장-39장 )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자식이 될까 조심하자 (사 1:2-20)

변론과 심판을 위하여 움직이는 여호와 (사 3:13)

진노의 날에 거룩하다 칭함을 받는 자가 되자 (사 4:1-6)

아름답게 하는 역사 (사 4:2-6)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집회 (사 4:4-6, 미 2:12-13)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 (사 6:1-13)

북방의 위력과 임마누엘의 날개 (사 8:5-8)

여호와는 두려워하는 자의 피난처 (사 8:11-18)

말씀의 증거와 흑암 세력 (사 8:16-22)

말씀에 잘못된 증거와 받을 재앙 (사 8:16-33)

열매와 가지 (사 11:1)

새시대를 이룰 인격 (사 11:1-9)

지식과 인간 종말의 문제 (사 11:6-16)

역사적인 강대국의 힘과 시온의 힘 (사 18:1-7)

주의 강림과 제단 문제 (사 19:19-22)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 (사 19:19-25)

인간 종말의 제단 문제 (사 19:19-25)

제단과 구원 문제 (사 19:19-25)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할 일 (사 24:1-23)

인간 종말에 찬송할 일 (사 25:1-12)

곤핍한 자에게 안식을 주는 여호와의 말씀 (사 28:7-13)

신앙과 예비 (사 28:14-22)

잠잠히 신뢰하는 자의 힘 (사 29:1-8, 30:15-17)

여호와를 공경하는 자의 두 가지 노선 (사 29:13-24)

기다리시면서 베푸시는 은혜 (사 30:18-33)

하나님 보호로 승리 (사 31:4-9)

기독교 종말의 완전 역사 (사 32:1-4)

영원한 평안과 안전 (사 32:15-2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보배 (사 33:1-6)

여호와께서 일어나야 할 때 (사 33:7-16)

여호와의 책과 인생의 사명 (사 34:16)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 (사 34:16, 35:1-10)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자식이 될까 조심하자

( 사 1:2-20 )

 

서 론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도덕적으로는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요,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을 받고도 짐짓 거역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를 해코자 하는 마귀를 거역하는 것은 의가 되는 것이요, 우리에게 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멸망 받을 죄라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일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마음이 멀어지는 것이다 (4)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들이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마음이 태만해지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한다 하여도 중심 보는 하나님은 더 가증히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되 가까이 하기를 기뻐하시고 고쳐 주기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멀어질 적에 슬퍼하는 것은 주고 싶은 마음이 불타 오르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가슴에 빚어진 젖이 있는데 이것을 주고픈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잃고 슬퍼하듯이 하나님은 충만한 은혜를 가지시고 주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어서 마음이 멀어진 자녀를 향하여 슬퍼하는 경고를 하신 것이 이사야서이다. 

 

2. 불탈 것을 슬퍼하신다 (7)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가 불탈 때도 친히 롯의 가정을 찾아 구원하고자 했지만 순종치 않는 롯의 처를 버린 것 같이 지금 온 세상이 불탈 수밖에 없는 무서운 환난을 앞에 놓고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건지고자 하여 아무리 기다리고 참고 있어도 짐짓 순종치 않을 때에 하나님은 기뻐서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슬퍼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큰집에 불이 붙게 되었는데 그 집에 있는 자녀가 도저히 모르고 잠이 들어 있다면 슬피 울면서 그 자녀를 그 불에서 건지고자 하는 심정을 가질 것은 부모의 사랑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는 일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이 심령 상태가 병들어 피곤해졌고 상처를 받았고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떨어진 것을 볼 때 그대로 있다면 불타는 재앙이 올 때 자기의 자녀도 같이 죽을 것을 슬퍼하시는 것이다.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자는 병든 심령을 가진 자라고 보게 된다. 

 

3. 헛된 예배를 드리는 자 (11-13)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것이 예배가 신령한 일이요, 제일 슬퍼하는 것이 예배가 속화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예배를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은혜를 내리기를 기뻐하는 신이시니 예배가 상달될 때에 얼마든지 하나님은 아낌없이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이다. 예배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요, 자기 부족을 깨닫는 예배라면 얼마든지 받으시고 은혜를 내리시므로 예배하는 자들로 만족함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예배하는 시간에 죄를 짓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외식으로 기도하는 자 (15) 

기도라는 것은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중심에 사랑이 없다면 그 기도를 오히려 싫어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서 무엇을 요청한다는 것은 오히려 요청하는 것이 더 수치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횡설수설한다는 것은 오히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가증한 일이 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사랑이 식어진 마음으로 기도를 오래 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기도를 많이 한다는 바리새 교인들을 책망할 때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제일로 슬퍼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이 식어지는 일, 피곤해지는 일, 예배할 때 범죄하는 일, 죄를 숨기고 기도하는 일, 이러한 무리들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지만 진노의 날에 하나도 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회개하면 흰눈 같이 희게 하여 새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하기 위하여 심판의 변론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순종치 않을 때는 원수의 칼에 삼킴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8-20). 

 

 

변론과 심판을 위하여 움직이는 여호와 

( 사 3 : 13 ) 

 

서 론 

하나님은 변론도 해야 할 책임도 있고 심판도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한 예언을 인간이 알도록 변론을 해야만 할 것이요, 인간이 행복 되게 할 수 있는 새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악인을 없애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심판기에 변론하러 일어나심에 대하여 어떤 형편에서 여호와는 변론하는 것이냐에 대하여 이사야 3장은 가르친 것이다. 

 

1.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예루살렘의 부패를 그냥 두고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3:1-3) 

이것은 왜냐 할 때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깨우치는 변론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변론이라는 것은 당신의 백성이 심판기에 이렇게 하면 너희가 죽을 것이요 저렇게 하면 살리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살려 주겠다는 언약의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의지한다는 것은 멸망을 받을 가증한 행동이다. 

 

2.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사회가 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친히 일어나시는 변론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4-7) 

하나님은 인심이 극도로 악화되고 부패되고 혼란한 세상에서 당신의 백성을 찾기 위하여 강한 역사를 일으키는 심판의 변론 자를 세워야만 될 것이다. 인간의 부패한 정치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니 하나님이 나타나야만 된다는 것이다. 

 

3. 지도자가 극도로 악하여 미혹을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8-12) 

만일 미혹을 극도로 당할 때 말씀의 칼인 하나님의 변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바로 인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혹을 심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변론을 따라오는 자를 찾기 위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유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변론을 바로 믿고 따르느냐에 대하여 시험해 보는 모략이다. 

 

4. 극도로 빈민이 살 수가 없는 난제가 오기 때문에 여호와가 일어나는 것이다 (14-15) 

이것은 가난한 자는 대부분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자들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극도로 악화되고 거짓이 많은 세상에서 동참할 수 없는 생활을 하려면 빈곤은 필연코 닥쳐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판기가 올 때는 도저히 의롭게 사는 자로써 생계를 보전할 수 없는 고난이 오는 것이다. 

 

5. 하나님은 극도로 교만하고 사치한 인간들을 볼 때 참지 못할 진노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16-17) 

여호와께서 제일 미워하는 것은 소위 시온이라 하면서 사치해지고 교만해지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모르고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미운 물건이 즉 이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당신의 변론을 나타내신 것이다. 은혜시대는 비록 귀천이 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생활을 하는 동시에 일반적인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변론을 위하여 사도 바울도 이방으로 향하여 나섰던 것이다. 이것이 바울 서신이다. 그러나 심판의 변론은 아무리 시온이라 하여도 여호와의 변론을 가감하면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목적한 변론이다. 이것은 계시록과 선지서이다. 

 

 

진노의 날에 거룩하다 칭함을 받는 자가 되자 

( 사 4 : 1 - 6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새시대를 위하여 역사하시되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도 거룩하다 칭함을 받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을 본문에 가르쳤다.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고 거룩하다 칭함을 받도록 역사하는 신이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속화된 세상에서 거룩한 사람을 만들어 거룩한 성산을 이루고 거룩한 나라를 이루어 거룩한 영광을 왕권으로 세세토록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되도록 역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싹이 되게 한다 (1-2) 

하나님께서 새시대에 들어갈 사람을 여호와의 싹이라고 한 것은 영육이 아울러 완전히 새로 지음을 받음을 뜻했다. 싹이라는 것은 완전히 깨끗해지고 새것이 된 것을 가르친 것이니 하나님께서 환난과 재앙의 날에 남은자가 되게 하는데는 완전한 사람이 되어서 새시대에 영육이 들어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나라를 이룰 자들이라고 보게 된다. 극도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영화롭게 되는 것이니 그들은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선악과를 먹은 타락한 피를 받았으므로 다 죽을 몸이 되는 피를 받아서 났지만 여호와의 싹이라는 것은 완전히 거룩함을 받아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시대에 들어가는 사람을 여호와의 싹이라고 했는데 육적으로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남녀의 관계가 깨끗하고 절대 거룩한 싹이 되는 자로서 영광에 한 반열을 이루되 남자의 영광의 이름을 따라서 한 반열이 된다는 뜻으로 일곱 여자가 한 남자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는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 남녀 관계와 같은 것을 뜻한 것이 아니고 아름답고 영화롭게 되는 반열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1절에 그날에 라고 말했고 2절에도 그날에 라고 한 것은 3장과 같이 부패한 시온을 없애는 날이라는 것이다. 

 

2. 거룩하다 칭함을 받음 (3-4) 

이 거룩이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자된 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 영혼이 구원받은 것은 중생을 받는데 있고 우리 몸이 살아서 영화롭게 되는데는 거룩하다 칭함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어떤 도덕적 행위나 수양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그들을 깨끗케 하되 피까지 정결케 한다고 했다. 이것은 은사의 역사가 아니고 종말에 권세 역사가 내리는 때에 강권으로 죄악을 제하는 역사이니 슥3:9과 동일하다.

영만을 구원하는 때는 그 영을 중생시키는 일이요, 그 몸은 병들어 죽는 몸이니 그 몸에 피까지 정결케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몸이 살아서 새시대에 들어가는 자는 그 몸의 피가 영생할 피로 이루어지도록 그 몸에 있는 죄의 질까지 다 소멸시켜서 그 몸으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광을 누리도록 하는 역사이다. 이것은 진노의 날에 남은자가 될 사람들에게 주는 역사이다. 사람이 병들어 죽고 피곤해 쓰러지는 그 몸은 그 피가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죄악의 활동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에 완전 역사라는 것은 강권적으로 하루아침에 그 몸을 완전히 개조시키는 일이 되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보호하는 성회를 이룸 (5-6) 

이날까지의 구원은 개인적인 신앙과 영혼 문제에 따라서 하나님은 역사했지만 진노의 날이 올 때는 단체적으로 보호를 받되 모든 집회 위에 낮에는 구름과 연기로, 밤에는 화염 빛이요 영광으로 덮어 보호할 것을 가르쳤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옹호한 일이 있었다. 그러면 그 이스라엘은 한 예언적인 것뿐이었지만 이 집회란 것은 온전히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이므로 이 집회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만큼 단체적으로 보호를 하되, 절대적인 보호가 있으므로 이 무리가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데는 종말에 촛대 교회 단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지를 통하여 묵시로 예언을 기록하게 할 때에 환난 중에 단체적으로 남은자가 되어 새시대 갈 것을 목적하고 말씀한 것이다. 기독교는 지금 이대로 교회가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역사가 임하므로 특별 성회가 있게 될 때에 그 집회를 통하여 완전 승리의 역사가 있을 것을 가르쳤다. 

 

결 론 

가장 아름답고도 복된 일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남은자로서 아름답고도 영화로운 단체를 이루는 역사라고 보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하나같이 성결함을 받아 하나같이 뭉쳐 부르짖는 역사가 아니고는 절대로 남은자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아름답게 하는 역사 

( 사 4 : 2 - 6 ) 

 

서 론 

조물주 하나님은 아름답게 하는 역사가 아니고는 역사하지 않는 신이시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아름다운 것을 이루기 위하여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거룩한 신의 영광이 창조 전에도 있었지만 그 영광은 아름답게 하는 역사가 있음으로서만 아름다운 영광의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름답게 창조한 것으로서 끝이 되는 것이 아니고 더 아름답게 하고자 할 때에 사람을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통과시켜서 더욱 아름답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장은 3장과 같이 극도로 부패되고 악화된 시대를 통과해서 아름답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한 것이다. 인생이 타락했지만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강권적으로 아름답게 해주실 것을 말씀한 것이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러면 아름답게 하는 역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대로 말한다. 

 

1. 사람을 아름답게 하심 (2상)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름답게 하심으로서 아름다운 새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다. 

첫째 : 남은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다(3) 

아무리 시온이 부패했다 하여도 남은자가 되게 하실 때에는 더욱 거룩한 자가 되게 하여 거룩한 왕국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인생 자체는 도저히 거룩하게 될 수 없는 타락한 본질이 있고 악한 세상에 물들었지만 택한자를 거룩하게 하실 때에는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그 피까지 정결케 하는 역사를 하신다.

이날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그 영을 중생시키는데 목적을 두었지만 심판기가 올 때에는 당신의 자녀를 그 몸의 피까지 정결케 하셔서 완전 개조를 시키되 죄의 몸을 거룩한 몸이 되도록 소멸의 영과 심판의 영으로 완전히 사로잡아 그 몸의 죄의 본질인 피까지도 정결케 하시는 역사를 말한다. 이것은 받은 자밖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생의 은혜도 받은 자밖에는 모르는 것과 같이 몸의 완전 개조를 받는 것도 받은 자밖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 이 역사는 개인적인 구원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단체적으로 구원을 받는 역사이므로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로 밤에는 화염 빛을 비추어 준다고 한 것을 보면 단체적인 보호와 구원을 뜻한 것이다(5). 

앞으로 완전한 교회가 이루어지려면 아무리 환난 재앙이 와도 그 교회는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역사하는데 있어서 그 교회 전체가 완전 개조를 받게 되는 일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다락방 교회에 중생의 역사가 나릴 적에 3천명이 일시에 중생을 받듯이 기독교 종말의 촛대 교회는 하루 사이에 전부 개조를 받는 일이 있을 것이다. 슥3:9를 보면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한다고 하셨다. 이것은 촛대 교회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역사를 나리지 않는다면 진노의 날에 남을 자는 전혀 없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은 강권으로 집회 위에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을 내리시는 것이다. 

첫째아담은 그 몸이 흙에서 지음을 받았고 생령으로 생기를 받았지만 거룩한 영의 역사를 받지 못했으므로 아름다운 인격을 이루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게 하는 역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그 몸에 부어 주므로 그 몸이 능히 아름다운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민족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였거든 하물며 인류 종말에 예수의 거룩한 피를 믿고 새시대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단체적인 보호가 밤낮으로 같이 할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새시대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 교회에 역사가 내리는데 따라 받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성신의 은사가 나릴 적에도 그 교회 위에 나린 것이요, 말세의 완전 개조, 성결, 변화의 역사를 나리는 것도 그 교회 위에 내리게 될 것이다. 

셋째 : 특별 보호가 같이 하므로(6)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역사를 내려서 이루어진 단체를 아껴 보호하므로 아무런 피해가 없게 해 주시는 것이다. 여기에 천막을 덮는다는 것은 계7:15과 같이 그 교회를 보호하는 것을 가르쳐서 장막을 쳤다고 한 것이다(사33:20). 교회라는 것은 사람이 거룩해지므로 거룩한 성회가 되고 거룩한 성회를 이루므로 특별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2. 땅의 소산을 아름답게 하심 (2하) 

이 땅의 소산은 사람을 위하여 축복으로 준 것이니 사람이 아름다워지면 땅의 소산도 아름다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이다. 

첫째 : 땅이 아름다워짐(사35:1-2) 

첫째아담이 범죄하므로 저주받았던 땅은 아름다운 성남 성녀로 새시대가 이루어질 적에 땅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둘째 : 도성이 아름다워짐(사54:11-12) 

아무리 지금 과학적 기술이 발달되었다 하여도 새시대의 도성과 같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때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모든 광물까지도 극도로 축복을 받아 아름다운 도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도성은 성도가 주둔하는 도성이 된다. 새시대의 소산이라는 것은 식물이나 광물이나 동물이나 다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결 론 

아름다운 새시대를 목적으로 가르친 말씀을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일은 슬픈 일이요, 그 몸이 완전 개조를 받아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되는 것이 아름다운 역사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집회  

( 사 4 : 4 - 6, 미 2 : 12 - 13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인간 종말에 친히 함께 하는 집회가 있으므로 새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집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집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많은 교회가 있지만 이 교회가 이대로 새 시대를 이룰 수 없고 반드시 특별한 집회가 있어야 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독교라는 단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없다면 앞으로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는 단체를 이루므로 남은 교회가 되는 동시에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떠한 집회라야 남은 교회가 된다는 것을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강권 역사가 나리는 집회 (사 4:4) 

앞으로 진노의 날에 남을 수 있는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심판의 영과 소멸의 영으로 몸까지 정결케 하는 역사가 나리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강권으로 나리는 것인데 완전 개조, 완전 성결, 완전 변화의 역사가 내리므로 몸의 피까지 정결케 되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진노의 날이 임박할 때에 나리는 하나님의 강권 역사이다. 은혜 시대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진노의 날에는 그 몸까지 구원하는 역사가 나릴 때에 강권 역사가 임하는 것이다. 

 

2. 밤과 낮으로 보호를 받는 집회 (5-6) 

하나님께서 어려운 환난이 올 때에 단체적으로 보호하시되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으로 보호하여 아무런 피해를 당치 않고 집회를 할 수 있도록 하시므로 남은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거룩하다 칭함을 받은 사람들만 모이는 집회이니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여호와 영광 중에 함께 하므로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으로 오는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룩한 교회가 이루어짐으로만 있게 될 것이다. 

 

3. 남은자를 모으는 집회 (미 3:12-13) 

하나님께서는 어느 교파에 있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자 중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어떠한 시련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람을 한데 모으시는데 있어서 친히 선두로 행하신다고 하셨다. 앞으로 교회는 부득불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한 자는 심판의 다림줄의 경고를 기쁘게 받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외식이 있는 자는 오히려 심판의 다림줄의 경고를 듣기 싫어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미2:6, 11). 앞으로 기독교는 교파가 문제가 아니요 진노의 날에 남을 수 있게 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거짓 선지의 교권을 이기지 못하고 그 아래에 굴복하는 자는 버림을 당할 것이요, 끝까지 굴복치 않고 싸워 나가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진실한 자로 인정하시고 친히 인도하시게 된다. 예를 든다면 타작기를 돌리는 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게 되는 것과 같다. 인간 종말에 남은자를 모아서 한 단체를 이루는 것은 여호와 친히 선두로 행하시는 역사가 있음으로만 있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선지 시대에 선지의 예언을 순종치 않았다가 망하였고, 바벨론의 포로된 자 중에서 끝까지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남은자가 되어 예루살렘을 복구했던 것은 기독교 종말에 남은자를 모아 촛대 교회를 이루는 동시에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역사이다. 사람 스스로가 완전한 단체를 이룰 수는 전혀 없고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심으로만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집회가 있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집회일 것이다. 세상에 많은 단체가 있다 하여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단체를 통하여서만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어떠한 인물이나 교권을 중심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함께 해 주시는 단체를 이룸으로만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 

( 사 6 : 1 - 13 ) 

 

서 론 

세상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제일 적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분주히 왕래하며 노력하는 이 일은 결국에는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가 하나님께로부터 묵시를 받아 말씀을 전한 일은 이사야가 이 세상에는 없어도, 본 성경은 오늘도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는 빛이 되었다. 이사야 당시에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종이 맨발과 벌거벗은 몸으로 나가 전할 때에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사야는 조금도 후퇴하지 않고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만일 이사야가 전한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이 시대에 참된 지혜와 지식을 얻어 볼 수 없는 자리에서 흑암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서를 바로 알게 되므로 인간 종말의 살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는 동시에 그 진리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아래서 승리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사야의 인격을 가져야만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1. 눈이 열려지는 인격 (1-4) 

이사야는 비록 땅에 사는 육의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안이 열려 보좌 세계를 내다보게 되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친히 하나님의 보좌 세계를 내다보는 인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역사적으로 선지와 사도들은 다 영계로 보는 눈이 열렸던 것을 알 수 있다. 신약 시대를 이루는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친히 천국의 광경을 보여 주셨고 아무리 기독교를 반대하던 사울이었지만 다메섹 광야에서 주의 광채를 보게 되었고 셋째하늘의 광경을 본 일도 있었다(고후12:1-3).

또 사도 요한은 계시를 받아 쓴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광경을 보아야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일할 수 있는 영계에 들어갈 때에 그때그때 보여주는 일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사람에게 하게 하실 때에 무조건 증거를 보이지도 않고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나를 만져 보고 증거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선지와 사도들이 보고 증거한 것을 우리가 본 것과 같이 믿을 때에 우리에게도 보여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2. 입술이 깨끗해지는 인격 (5-7)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리 눈으로 계시를 보았다 하여도 입에 실수가 있다면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보좌를 본 이사야는 자기 입에 실수가 있는 것을 깨닫고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불로 그 입을 깨끗케 하는 증거를 보여 주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때마다 자기 입의 실수를 큰 죄로 알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부족을 용서해 주시고 깨끗한 입술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증거하도록 하실 것이다.

금일에 교회 부패는 강단에서 종의 입술이 깨끗하지 못할 때에 그때그때 새로운 말씀이 나리지 않게 되므로 모든 심령들은 다 피곤을 느끼게 되며 이것이 오래갈 때에 교인들의 출석이 은혜롭지 못하여 자연히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게 되고 형식적인 예배가 되는 동시에 그 교회는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이 식어지는 동시에 교회는 파동이 일어나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자동적으로 세속화되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 부패의 모든 책임은 입술이 부정한 종에게 있는 것이다. 

 

3. 정직한 인격 (8-13)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전할 때에 인간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여기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전할 것뿐이다. 만일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 깨닫지 못한다고 그것을 전하지 않고 감해 버린다 해도 죄가 되고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가하는 것도 죄가 된다. 이사야가 전한 말씀은 심판과 새시대를 가르친 교훈이니 그 시대 사람이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기록해서 전한 것과 같이 우리가 나가 전해야 된다고 본다.

이사야 때의 사람들은 이사야의 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반대했지만 인류 종말에 거룩한 자만 남게 되는 심판기가 올 때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같이 그 말씀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일 이사야가 인간들이 알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큰 화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는 정직하게 그대로 전할 책임이 있고 듣는 사람은 그대로 가감없이 믿고 순종하여야 한다.

이사야 선지가 정직하게 전한 말씀은 오늘 우리가 다시 예언할 심판의 다림줄의 경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선지 이사야의 증거는 거짓 선지의 세력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누구든지 이사야서를 분명히 알게 될 때에 거짓 선지에게 미혹을 받지 않고 남은자가 되어 새 시대를 영광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은 영안이 열린 자, 입술이 깨끗한 자, 정직히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자라도 완전하게 만들어서 쓰시는 것이니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자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북방의 위력과 임마누엘의 날개 

( 사 8 : 5 - 8 ) 

 

서 론 

조물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원수에게 위력을 먼저 주시고 그 위력 앞에 모든 사람이 떨게 될 때에 홀연히 원수의 위력을 없이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일을 행하시는 것이니 과거 이사야 시대에 북방 앗수르의 위력을 들어서 부패한 이스라엘을 짓밟고 들어오게 하는 동시에 히스기야 왕의 간곡한 기도로써 북방을 승리하게 하는 증거를 보여주면서 인간 종말에 대한 묵시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게 하여 세계 인류에게 전하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경고가 됨 (5-7) 

이스라엘이 생명수와 같은 말씀을 버리고 이방적인 세력에게 속화가 되는 사마리아가 될 때에 앗수르를 들어 막대기를 쓴 것은 심판기에 부패한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이방과 타협할 때에 북방으로부터 심판의 위령을 가진 악의 세력이 올 것을 말씀한 경고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는 예언적으로 나타난 역사도 있고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나타난 역사도 있으니 악자를 들어서 쓴 것도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하나가 되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도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니 과거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일은 임마누엘을 통하여 나타날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계통적인 역사니 묵시를 받는 선지들이나 묵시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은혜 시대 역사나 심판기의 역사는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계통적인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끔 하신 하나님께서도 계속적으로 역사하는 것이요, 그때 마귀 앞잡이로 역사하던 악의 세력도 계통적으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큰 전쟁이 있을 때에 한 사람으로서 그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아무리 희생자가 있다 하여도 계속으로 용사를 공급하는 나라가 되어야 전쟁에 승리할 수가 있다.

만일 어떤 나라가 전쟁을 시작하고 희생자가 있다고 하여서 용사를 보충시키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패전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마귀와 싸우는 용사를 들어서 과거 앗수르 바벨론 시대에 싸우도록 한 것이 구약 선지 시대라는 것이다. 모든 선지를 통하여 하나님은 묵시로 말씀을 주실 적에 끝까지 승리하도록 계속으로 마귀 편과 싸우게 하므로 필연코 이스라엘 왕국이 새시대를 이룬다고 말씀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선지서다.

그러므로 끝까지 악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날 것을 말씀했고 또는 하나님의 종들도 더 강하게 일어날 것을 말씀할 때에 먼저 임마누엘이 되는 그리스도의 역사를 말할 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했고 임마누엘이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는 일을 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말했다(사7:14-15).

그러므로 지금 북방의 공산당은 앗수르의 계통이라면 우리 성도는 다윗의 뿌리가 되는 임마누엘의 계통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의 사명은 독립적인 사명이 아니고 계통적인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는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하셨고 또는 그 자손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신성과 인성을 가르친 것이다(계22:16).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나시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인 신으로 역사해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다윗 왕국을 이루었으므로 다윗의 뿌리가 되는 신성을 가졌고 또는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시어 완전히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다윗 왕국에 들어갈 자가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되었고 종말에 변화 성도를 통하여 완전히 마귀 세력을 지상에서 없이하는 대 승리를 이루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서에 가르친 말씀이다. 북방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스라엘의 남은자에게 멸망을 당하게 되고 새시대가 온다는 것은 이스라엘 계통인 변화성도를 뜻한 것이다(사10:22-23). 

 

2. 임마누엘의 통치 (8, 9:6-7)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고, 아담을 창조할 적에 아담을 통하여 세계를 통일하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담을 통하여 영광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면 성부, 성자, 성신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영원한 나라를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놓으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한 일을 자랑하는 일이 되겠으므로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사람을 꾀어 보게 하고 사람이 어리석어서 꾀임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인생을 버리지 않고 성부, 성자, 성신이 사람에게 역사해서 타락한 인생을 다시 구원해 주므로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가르쳐서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 하리라고 하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 때 날개 없는 인간이라도 그 비행기를 타면 같이 날게 되듯이 누구든지 완전하신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의 완전 승리의 역사의 힘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생들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창조할 때에 임마누엘의 역사를 믿어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목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이 범죄케 하는 신은 아니다. 사람이 약해 범죄하더라도 임마누엘의 역사로써 택한자를 구원하여 승리하게 되도록 역사해 주는 것을 임마누엘의 나래라는 것이다.

어떤 신학자가 예정론을 말할 때에 사람이 타락하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라 하는 것은 탈선된 학설이라고 본다. 사람이 마귀에게 꾀임 받아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예정한 목적을 이루어 놓는데는 임마누엘을 통하여 이루어 놓되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해 주시고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주고, 능력을 구하면 능력을 주되 택한자에게 회개하도록 징계하시고 완전한 인격이 이루도록 하시되 택한자에게 믿음을 주어서 믿고 구하는 대로 주는 것을 임마누엘의 역사라는 것이다. 

 

결 론 

완전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완전이 없고 대상자가 있음으로써만이 완전이라는 것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 계신 완전한 신이 있다 하여도 그 신께서 홀로는 완전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 없되 완전 역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되는 인생이 있음으로써 신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피조물된 인생에게 완전한 열매가 되는 것이다. 또는 인생으로 하여금 신의 완전한 역사를 받는다 하여도 사람에게 원수가 되는 세력이 없다 해도 신의 완전 역사는 인생에게 큰 영광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금일에 우리의 원수가 되는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남으로써 임마누엘의 나래가 되는 강한 역사가 우리에게 완전한 열매가 되므로 새시대가 완전히 이루게 되니 이것을 가르쳐서 북방의 위력과 임마누엘의 날개의 역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두려워하는 자의 피난처 

( 사 8 : 11 - 18 ) 

 

서 론 

하나님께서는 미약한 인간을 들어 강한 자를 이기게 하는 것을 영광으로 아신다. 그러므로 언제나 가장 사랑하는 자를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난관에 처하게 하고 거기서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그 사람을 위하여 싸워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택한자에게 역사하시는 일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불의한 일에 동참치 말아야 역사하심 (11-13) 

하나님께서 조용히 감찰하고 계신 것은 불의의 세력을 강하게 역사하도록 해서 누가 그 세력 앞에 타협치 않나 그것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아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절개가 있는 자에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당신이 역사하시기 전에 먼저 마귀의 강한 세력을 들어서 택한 자녀를 까불어 보아서 불의의 세력과 타협을 하는 자는 음녀로 인정하고 타협치 않는 사람은 진실한 아내와 같이 인정하시고 그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남편이라 하고 백성을 아내라고 말씀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절개를 지키는 자에게만 역사한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을 찾기 위한 선한 방법이다.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소망이 없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은 진실하신 신이신 고로 조금이라도 변함이 있는 자는 함께 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천할 인격이 없다 하여도 마음만은 변치 않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2. 불의한 자에게 함정과 올무가 되심 (14-15) 

하나님께서 언제나 말씀을 주시고 강한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누가 시험에 빠지나 안 빠지나, 걸리나 안 걸리나 시험해 보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공경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말씀에 탈선이 될 때는 함정과 올무가 되고 말씀에 순종할 때는 피난처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는 길에는 함정과 올무가 있게 된다. 말씀에 순종하면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이시므로 과거 이스라엘의 60만 대중이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가다가 다 함정과 올무에 빠졌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남아서 순종하는 무리들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고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 복구를 목적하고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시련 가운데서 3,4인이 단결되어 예루살렘을 복구하는 권리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도 되시고 함정과 올무도 되는 것이니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오실 때에는 예언을 지키는 자라야 복 있다고 한 것은 지키지 않으면 함정과 올무에 빠지는 것이요, 지키면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남은자가 되게 하여 새땅의 왕권의 축복을 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하라는 것이 아니요, 아무리 간교한 뱀이 꾀여도 당신을 경외하고 그 말씀만 순종하면 그 말씀대로 보호하고 말씀대로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3. 기다리며 바라보는 자에게 역사하심 (16-18) 

언제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서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것을 목적으로 두고 역사할 때에 영원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검열하시므로 여러 가지 선한 모략이 있기 때문이다. 선한 모략이라는 것은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고는 다 낙망하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모략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기다리고 바라보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야만 된다. 아무리 처음에 모든 일을 바로 해 나갔다 하여도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참지 못할 때에는 먼저 수고가 다 헛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학생들이 선생에게 아무리 잘했다 하더라도 시험을 볼 때에 합격을 하지 못했다면 그 선생에게 잘한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과 같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시험을 치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요, 당신의 사람이 끝까지 기다리고 참고 나가는데 보호하지 않고 원수에게 먹힘을 당하게 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라고 할 수 없다. 시험을 해 보고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서 역사하도록 하여 증거케 하시는 것이 공의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신 것은 영적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예언이 된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방 신당을 예루살렘 성지에 허락했다는 조건에서 유다와 베냐민 지파 외에는 다 사마리아가 되었고 히스기야가 기도로 승리한 용사이지만 이방 바벨론 사신의 예물을 받고 타협을 했다는 조건에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바벨론에게 망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북방 세력이 두려워 타협한다는 것은 육적 이스라엘이 망한 거와 같이 될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두려워하는 자라야 북방 세력을 이기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말씀의 증거와 흑암 세력 

( 사 8 : 16 - 22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을 증거하는 종과 흑암과의 대립을 시켜 놓고 말씀 증거가 바른 자는 흑암을 이기게 하고 말씀 증거가 바르지 못한 자는 흑암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을 공의롭게 다스리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재앙이 북방으로 올 시기에 종된 자가 받는 심판을 중심하여 말씀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북방으로부터 재앙이 오고 그 재앙 속에서 남은자로 새시대를 이룬다는 것이 인류 종말의 끝을 맺는 환난이며 심판인 동시에 말씀을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모든 결말을 맺게 하는데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 여호와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자를 들어 쓰심 (16-18) 

아무리 북방으로 환난이 온다 해도 북방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만 기다리고 바라보는 자를 승리하도록 하신다(13). 하나님은 심판기에 북방으로부터 환난이 오게 하는 것은 당신의 종과 백성을 해코자 하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호하되 끝까지 기다리고 바라보는 자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아무런 환란이 없이 참된 종을 알 수 없고 또는 보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려운 환란이 인력으로 당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나타나 보호할 때가 온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이므로 극도로 바로의 마음을 강팎케 했던 것이다. 심판기에도 북방 환란이 하수같이 오게 하는 것은 임마누엘의 세력으로 세계를 정복할 때가 온 증거이다(사8:7-8).

하나님은 언약을 세울 때에 아브라함에게도 네 백성이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고생할 것을 말씀하고 이방 세력이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괴롭게 할 때에 하나님이 이방 세력을 징벌하고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겠다는 말씀이 응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왕국으로 이루어질 때에 여호와의 말씀대로 애굽의 세력을 강하게 하며 이스라엘을 탄압하게 하고 거기서 모세를 들어 재앙으로 땅을 치며 그 민족을 해방시켜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심판기에도 북방 세력을 삭도같이 강하게 쓰겠다고 사7:20에 말했고 막대기로 쓰겠다고 사10:5에 말했고 넘치는 하수같이 내려온다고 사8:7에 말했고 북방 세력을 사자같이 강하게 쓴다고 나2:11-12에 말했고 미5:6에는 앗수르 사람이 짓밟고 나올 때에 북방을 없애고 새시대가 온다고 하였으니 이 전체는 다 하나님의 심판기에 모략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말했다. 금일에 와서 북방 세력을 강하게 높이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종들을 심판할 때가 왔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알아야 할 것이다.

이때에 종들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큰 징조가 하나님께로 나타나게 되므로 필연코 승리할 것은 사실이다. 악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이 말씀이 응했다면 당신의 종을 강하게 들어쓴다는 것은 반드시 응할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로 승리한 것 같이 오늘에도 필연코 승리는 여호와를 기다리고 바라보는 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2. 탈선된 길에 서지 말 것 (19) 

탈선이라는 것은 정확 무오 한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지시에 치우치는 일이다. 심판기에는 하나님께서 마귀를 개방시켜 지절거리고 속살거리는 마귀의 시험이 많이 오게 할 것이니 조금도 말씀에 탈선된 길에 서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야만 될 것이다. 에덴 동산의 하와에게도 지절거리는 마귀의 말이 올 때에 필요없이 뱀과 말하게 되므로 미혹이 왔던 것이다. 심판기에 흑암을 물리치려면 조금도 말씀에 가감된 신비에 치우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영계 혼란이 극도로 심할 것이니 마술사의 큰 미혹이 올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니 어지럽고 딱한 일이 올 때에 거짓 선지는 기회를 타서 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는 환난을 무서워할 것도 없고 또는 답답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 자로서 그 말씀 하나만을 굳게 잡고 강하게 나갈 때에 흑암은 물러갈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 미혹도 말씀이 응하는 과정이므로 말씀에 바로 서느냐 못 서느냐는 것을 목적한 마귀의 시험이기 때문이다. 

 

3. 말씀 증거가 바르지 못한 자의 받을 화 (20-22) 

하나님의 빛이라는 것은 말씀을 따라오는 것이니 말씀의 증거가 바르지 못한 종은 빛의 역사가 떠나가므로 자동적으로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고 하였으며 주릴 때에 마음이 번조하여져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환난과 흑암과 고통에 떨어지되 극히 심한 환난 중에 빠질 것을 말했다. 가장 큰 일은 재앙기에 하나님의 종이 말씀을 바로 증거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심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장 크고도 강한 일은 말씀의 증거가 바로 되어 흑암의 세력을 이기고 나가는 것이니 누구든지 말세에 흑암을 뚫고 나갈려면 진리의 완전 무장이 있어야 될 것이며 조금도 혼선이 없는 증거자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오늘의 큰 시험은 3가지로 온다고 볼 수 있다. 

1. 횡설수설하는 쓸데없는 학설이다. 

2. 횡설수설하는 지시에 치중하는 일이다. 

3. 횡설수설하는 말로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종된 자의 심판이라는 것은 그 말씀을 바로 증거하고 못하는데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결 론 

인류 역사에 시대를 따라 시대적인 말씀을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시대가 변천될 때에 큰 신앙파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앙하되 잘못된 노선에 들어가는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큰 문제는 진리의 혼선된 신앙자가 받는 재앙이니 진리의 다림줄을 바로 쥔 자의 완전 승리로 평화 왕국을 이루는 일이다. 

 

 

말씀에 잘못된 증거와 받을 재앙 

( 사 8 : 16 - 33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시대를 따라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을 들어서 쓰는 동시에 그와 반대로 말씀이 잘못된 증거를 가진 사람은 버린다는 것이 하나님의 시대적인 역사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가 지나고 은혜 시대가 올 때 시대적인 증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유대교는 망하고 만 사실을 똑똑히 가르쳐 준 것이다. 

 

1. 말씀에 잘못된 증거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심판과 새시대를 목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7장을 보아도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14절에 가르쳤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은혜 시대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보다도 심판이 오고 새시대가 올 때 임마누엘의 날개는 세계에 편만 해진다는 것을 사8장 8절에 가르친 것이다.

깊이 말하자면 이와 같은 환난과 재앙이 오고 이와 같은 새시대가 올 것이니 여기에서 임마누엘이 아니고는 북방의 앗수르적인 원수의 세력을 막아낼 자는 없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면 이 앗수르는 과거 이사야 시대의 앗수르를 가르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이 나올 때라고 한 것을 본다면 분명히 말세를 가르친 것이다. 말세에 북방 앗수르는 계시록의 붉은 세력이라는 말씀과 대조가 된다.

심판기라는 것은 앗수르적인 북방 세력이 창일한 큰 하수같이 그 세력이 온 땅을 덮어 나올 때 임마누엘이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 하리라고 한 것을 본다면 8장은 종말의 심판기를 말한 것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북방이 강하게 내려오는 위기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을 증거하는 종이 그 시대적인 증거를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말씀에 맞지 않도록 해석하는 것을 잘못된 증거라 하는 것이다.

말씀 증거자가 어떤 속살거리는 마술적인 지시에 따른다는 것도 잘못이요, 자기의 주관을 성서보다 앞세운다는 것도 잘못된 증거이다. 이날까지는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시대이니 종말관이 혼선됐더라도 하나님은 묵인했으나 사8장8절 이하와 같은 시대가 올 때 증거가 잘못되면 증거한 자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을 죽이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사람을 망케 하는 것 보다도 전 교회를 망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2. 받을 재앙 (20-22) 

1). 빛을 보지 못한다(20) 

이것은 흑암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침빛이라는 것은 새시대의 영광을 말한 것이다. 새시대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2). 땅으로 헤맨다(21) 

하나님은 말씀을 따라서 재앙의 날에 붙들어 주고 인도해 주는 것이니 말씀에 잘못된 종을 버리게 되므로 어찌할 줄 모르고 헤매는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3). 곤고하며 주리게 된다(21) 

이것은 자기 자체가 말씀에 잘못된 증거를 하였으므로 위로부터 오는 힘을 얻지 못하니 곤고하고 주리게 될 것이다. 

4). 번조스럽게 되어 하나님을 저주하게 된다.

이것은 배은망덕이다. 자기가 말씀에 바로 못 섰음으로 하나님이 버리는 것은 생각지 않고 직접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21하) 

5). 아무리 잘 살 길을 찾으려고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이 오게 된다.

이것은 환난과 흑암과 고통에서 건져주마는 말씀을 부인했으니 자동적으로 여기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때는 전 세계 인류가 당하는 심한 흑암이니 그 가운데로 쫓겨 들어간다는 것이다(22) 

 

결 론 

우리는 종말의 재앙이 무섭다는 것보다도 말씀의 잘못된 증거를 하는 종이 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환난과 고통이 오는 것도 말씀대로 오는 것이요, 그 환난을 면하게 되는 것도 말씀대로 될 것이니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것 이외는 종된 자의 살 길은 없을 것이다. 

 

 

열매와 가지 

( 사 11 : 1 ) 

 

서 론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열매는 가지에 있다고 말한 것은 종말의 사명자를 가르친 것이다. 이것은 10장과 같이 세계적인 환난이 있고 11장과 같은 새시대에 이루어지는 열매는 가지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제 가지와 열매에 대하여 본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한 가지는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먼저 가지라는 것은 뿌리가 있고 다음에 있는 것이니 주님께서 당신을 그루터기라고 말한 것은 요15장에 말씀하였다. 본문에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은 그루터기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것이니 가지는 열매를 맺는 모든 진액은 그루터기를 통하여 가지에 연락이 됨으로서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대표적인 한 종이 나옴으로 그 위에 여호와의 신이 강림한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슥4장에 두 감람나무 가지란 말이나 동일한 것이다.

이 가지에 대하여 다시 말하자면 살아서 새시대를 정복할 사명자를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선지서는 심판과 새시대를 말할 적에 살아서 안식에 들어갈 종족에게 전할 복음이 되는데는 심판 날에 다시 예언할 증인 감람나무의 역사가 일어남으로서 이사야가 받은 비밀의 뜻을 분명히 다시 예언할 대표자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지에게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이 임하므로써 모든 선지의 비밀을 분명히 변론하여 전 세계적인 환난에서 모든 백성을 구출시키는 역사를 하는 종을 가르친 것이다. 

 

2. 열매 

열매라는 것은 대표적인 종이 나와서 그 종의 역사가 그 종들에게 임하므로 서 많은 종들이 일어나는 것을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파를 초월한 종말의 역사에 왕권의 한 클럽을 열매라 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는 것이다. 

1) 옳은 판단을 가지게 된다. 

만일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는 종이라면 옳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이 되는 종은 절대 신과 같이 보고 듣고 말하게 되므로 끝을 완전히 맺는 것을 열매라 하는 것이다. 

2) 입에 막대기로 세상을 친다.

계19장 10절 이하에 백마 탄 자의 입에서 검이 나온다는 말이나 같은 진리다. 누구든지 입에 말씀으로 세상을 치는 자가 아니면 마지막 결실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3) 공의와 성실로 띠를 삼는다 

공의라는 것은 시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 것이니 이 종은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중심으로 하여 성실과 진리로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만일 공의로 띠를 삼지 않고 성실로 띠를 삼는 종이 아니라면 끝을 바로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새시대를 이루는 결실이라는 것은 완전한 가지가 되는 종이 나타남으로만이 끝을 맺는 것이니 어느 시대나 대표적인 종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은혜시대에는 싹으로 난 예수님이 만민의 기호로 설 만한 역사를 한 것이다. 기호라는 것은 끝을 맺는 것이 기호가 아니고 끝을 맺는 종들이 기호를 들고 나가는 것이니 세계 통일의 기호는 싹이 되는 메시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세계통일의 기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동시에 기호를 들고 나타나는 한 가지가 있어서 종말의 완전 역사를 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새 시대를 이룰 인격 

(사 11 : 1 - 9 ) 

 

서 론 

새시대라는 것은 원수의 세력이 북방으로부터 온 세계를 정복할 야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침략적 정치를 가지고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자랑하며 자기의 독자적인 권리를 자랑하며 나오는 일이 세상 끝에 있을 것을 사10장에 말했고 11장에는 북방이 아무리 강하지만 그것을 없애고 새시대를 이룰 자의 인격을 말할 때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완전한 새시대를 이룰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쳤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이룰 인격은 어떠한 인격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여호와의 신을 받은 자다 (2) 

하나님은 새시대 건설에 왕권 가질 사람을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다고 한 것은 비록 농촌에서 양을 치는 목자의 하나인 이새의 가정에서 다윗 같은 용사가 나온다는 것에서부터가 새시대 건설에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새의 아들 중 8째 아들인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는 용사로써 선지국가를 이루어 그 나라에서 모든 선지가 하나같이 묵시를 볼 때에 아무리 약소한 다윗 왕국이지만 필연코 새로운 시대를 이룰 왕권은 다윗의 왕권이라는 것을 중심하여 묵시를 보았던 것이다.

아무리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이 강하여 인간이 볼 때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세계를 통치할 것으로 보이지만 새시대를 이룰 때는 북방 앗수르가 망하고 다윗 왕국에서 나올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룰 것을 말했으니 이 앗수르와 바벨론은 어느 때를 가르쳤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인류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오는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가르쳤다. 그렇다면 새시대를 이룰 인격은 그리스도 한 분을 가르쳐 말한 것이 아니고 그 계통인 사명자, 말세의 종을 가르쳤다고 보게 된다.

종된자의 인격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인격이니 가지를 통하여 맺는 것은 말세에 변화성도의 인격을 가르쳤다고 본다. 변화성도라는 것은 그 종을 통하여 완전히 지상에서 남은 종으로 새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생존 변화성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변화성도가 전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완전 지식이 된다. 그러므로 완전 지혜와 총명의 신을 받으므로 새시대를 이루는 진리 운동에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되니 이것은 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세상이 다 알게 된다.

이날까지의 숨었던 모든 비밀이 그 종을 통하여 다 알도록 전하게 될 것이며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악한 모략으로 강하게 들어온다 하여도 모략과 재능의 신이 여호와께로 오므로 오히려 원수가 그 앞에서 굴복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된 것은 북방 세력이 아무리 인간의 방법을 가지고 교만하게 나온다 하여도 결국은 새시대를 이루는 하나님의 모략적인 도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을 완전히 받은 인격 앞에 정복을 당하게 될 것은 모든 세상 만사가 하나님의 장중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들은 스스로 속는 인격이니 여호와의 신을 받은 사람 앞에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의 신을 받음으로만이 조금도 실수가 없는 지식의 사람이 될 것이다. 완전한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분명히 아는 지식일 것이니 이 지식만으로 세계 통일의 인격을 이룰 것이다. 

 

2. 심판권을 받은 인격이다 (3-4) 

심판이라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판단이 없는 인격이라야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받아서 신과 같이 쓰이는 자 외에는 세계를 바로 통치할 자가 없다. 자고이래로 인간의 정치라는 것은 사람의 두뇌로 하는 것이니 침략적인 정신을 가지고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야심에서 불의한 정책을 하므로 반드시 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신의 판단을 자신이 받고 신의 판단 아래에서 남을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인격이 아니고는 기독교 종말에 완전 역사를 하지 못하므로 세계 통치라는 것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는 자라야 필연코 새시대를 이룰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바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니 오직 심판자는 여호와의 신이시므로 여호와의 신에 이끌려 쓰여지는 자로 새시대를 이루는 열매가 있을 것이다. 

 

3. 공의와 성실로 이루어지는 인격이다 (5)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 것을 알 때에 조금도 가감이 없는 신앙 양심에서 성실로 몸의 띠를 삼고 나가는 자 외에는 새시대를 이룰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새시대는 공의로운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스라엘 야곱이라 하여도 공의로운 말씀에 순종치 않을 적에 용서 없이 죽이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새시대라는 것은 다림줄의 진리로 이루어지는 시대이니 공의로운 말씀이 완전히 무장된 인격이라야 될 것이다. 하나님은 조금도 말씀이 가감될 자에게 역사할 수가 없으므로 아무리 빈한한 자라도 말씀에 떠는 자라면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고가 같이 하므로 필연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새시대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새시대라는 것은 지상 왕국을 가르친 것인데 이것은 천국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가지 된 종이 그리스도 왕국을 이루는 지상 평화 시대를 말한다. 창조의 목적을 완전히 이루는 시대를 새시대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했지만 아담이 범죄하므로 이 땅에 저주를 받았던 것인데 말세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통하여 종말에 남은 종으로 지상에 축복이 이루어지는 왕국을 가르친 것이다. 

 

 

지식과 인간 종말의 문제 

( 사 11 : 6 - 16 ) 

 

서 론 

오늘날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식이 있는 자가 아니요, 무식한 자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물건에 대해서 아무리 잘 안다 하여도 주인을 모르고 집안에 있는 물건만 좋다 나쁘다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물건에만 눈이 밝은 사람이지 사람 볼 줄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동물 중에서 고등 동물은 될지언정 사람 중에서 고등 사람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동물 중에서 고등 동물이 세계를 통일할 것이 아니고 사람 중에서도 고등 사람이 세계를 통일할 것이다. 어떠한 지식을 가져야 인간 종말에 복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 종말 (6-9) 

오늘날 유물론 과학자들은 과학이 극도로 발달함으로써 인간이 노동을 적게 하고도 먹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이것이 즉 천국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여덟 시간 노동하던 사람이 두 시간만 노동해도 먹고산다면 이것이 얼마나 평안한 생활이냐고 하는 것이 그들이 인간 종말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일을 적게 하고 먹고사는 것으로 만족이라 한다면 산에서 사는 동물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먹고사니 인간들은 동물의 세계를 이루면 된다는 것인가?.

이런 따위의 지식을 가지고는 인간 종말의 합당한 인격을 이룰 수도 없다.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은 세 가지로 본다. 물리를 아는 과학, 도리를 아는 철학, 진리를 아는 신학이 있다. 오늘날 신학이라는 간판 밑에 과학을 초월한 지식, 철학을 초월한 지식이 완전히 없다면 그 신학은 자동적으로 퇴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물체에 관한 지식으로 물체를 사용하고 도리를 아는 지식으로 완전한 인격을 이루어 완전한 나라를 이룬 것을 새시대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 교회라고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나 박약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날까지에 성자의 역사와 성신의 역사는 이루어진 일이므로 우리가 알았지만 하나님의 새일의 역사는 모르고 있다. 새일이라는 것은 인간 종말에 없앨 자를 없이 하고 남길 자를 남겨 그 남은자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어 눈물, 죽음, 고통, 전쟁, 질병, 재앙이 없는 땅을 이루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무한한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을 가르쳤다. 사복음을 읽어서 예수를 알 수 있고 사도행전과 편지서를 읽어서 성신을 알 수 있고 계시록과 선지서를 바로 알게 될 때에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계시록과 선지서를 통하여 분명히 안 자라야 새시대에 들어갈 인격을 이룰 수 있다. 

 

2. 세계 통일의 기호와 인간 종말(10-12) 

이날까지 세계 통일의 기호가 있었던 일은 없었다. 오늘날 소위 붉은 깃발이라는 것은 낫과 망치를 그려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무식한 사람들의 깃발이다. 낫을 든 농민과 망치를 든 노동자가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이 무신론 공산당의 기호인데 반드시 망할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자기의 노동만 제일로 알고 그 이상의 것을 모른다면 소와 같은 생활을 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 통일의 기호는 반드시 십자가의 기호가 될 것이다.

십자가라는 것은 세계 인류를 대표하여 대 승리를 이룬 십자가이니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늘에서도 기뻐하고 땅에서도 기뻐할 일이다. 낫과 망치를 들고 일어나서 남을 죽이고 피의 도성을 이루는 것이 소위 공산 국가라면 세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은 승리로 이루어진 나라는 사랑의 동산이다. 이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조물주께서 인간을 사랑해서 역사하는 사랑이니 낫과 망치를 든 사람들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기호는 붉은 깃발을 꺾어 넘기고 세계를 통일하는 기호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기호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 통일의 기호가 서는 평화 왕국이 올 것을 가르친 것이다. 본 성경은 어느 나라든지 십자가 기호를 중심하여 모여든 무리들이 남은자가 되어 새시대를 이룰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십자가 기호의 세계 통일이 온다는 것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만 남은자가 될 것이다. 

 

3. 완전 승리의 역사와 인간 종말 (13-16) 

본문 성경을 보면 모든 원수가 다 없어지고 남은자로 새시대가 이루어지는데 있어서는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와 같은 역사가 있을 것을 가르쳤다. 오늘날 소위 신학자들 가운데 이적은 폐지라 하는 학설도 있고 과거에는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역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학설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성경을 기록할 때에 나타난 역사는 인간 종말에 새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볼 때에 인간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신과 같이 들어 쓴다고 말하였다. 지금 소위 협상이라는 간판 밑에서 평화를 꿈꾸고 있지만 이것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 애굽을 치듯이 하나님의 종들을 들어서 북방을 치므로 북방이 망하는 동시에 평화로운 새시대가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 대략을 들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10장, 미5장, 합2장, 욜2장, 슥12장, 계11장, 계19장을 보아도 분명히 이것을 가르쳤다. 그밖에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 선지서와 계시록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현 상태에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원수의 세력이 굴복을 하는 큰 역사가 있음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므로 끝을 맺는데 이것을 새일의 진리라고 한다. 

 

결 론 

지식이라는 것은 그 인격에 따라 있는 것이니 과학만을 체험한 자는 그 지식에 국한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체험한 자는 그 지식에 국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은 그 체험과 합치가 될 때에 열매를 가져오게 된다. 현 시대가 물질 문명을 가져 온 것은 과학적 지식을 체험한 자들의 활동이라고 보며 새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한 자들의 활동에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인 강대국의 힘과 시온의 힘 

( 사 18 : 1 - 7 ) 

 

서 론 

인간의 인류 역사는 강대국의 역사를 비롯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본문을 보면 강대국의 백성들까지도 예물을 가지고 시온으로 온다고 했다. 그러면 강대국의 힘은 어느 시기까지 보전될 것이냐 하는데 있어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큰 꿈을 본 사실도 있었다(단2:31-35). 이 꿈은 강대국인 바벨론을 비롯하여 이 땅에 성도의 나라가 올 때까지 역사적인 강대국은 우상으로 보여졌던 것이다. 이것은 왜냐 할 때 세상 강대국은 생명 없는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벨론 시대로부터 금, 은, 동, 철, 반철 반토로 인류 역사의 강대국을 표준하여 보여준 것이니 바벨론 문명, 바사 문명, 헬라 문명, 로마 문명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기독교 복음으로 문명을 가져온 현실에 양대 진영으로 철과 흙같이 되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18장에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이여 하는 슬픈 경고의 말을 쓰게 되었다.

왜냐하면 남방 구스 강 건너편 아프리카는 새로운 시대가 올 때까지 강대국을 의뢰하는 연약한 자로써 끝을 보고 말겠다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말했던 것이다. 다니엘 선지도 인류 종국을 고하는 전쟁은 사상과 정치가 남북으로 대립되어 역사적으로 없던 환난을 이루는 때에 구스 땅과 리비아(즉 아프리카)는 북방의 시종을 들다가 세상 끝을 보리라고 말할 때에 북방 강대국의 세력은 동북의 소문을 듣고 번민을 하다가 어쩔 줄 모르고 발악을 하다 망하게 될 때 시대는 끝이 난다고 말했다(단11:43-44). 

1) 강대국의 힘, 이것은 한 침략적인 힘에 불과하다(6) 

인류의 영웅적인 투쟁이란 것은 약자를 잘 이용해 먹는 나라를 강대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는 큰 악한 도성이라고 말하게 된다. 하나님은 역사하실 적에 악의 세력으로 도구를 삼을 적에는 강한 나라를 들어서 썼다는 것이 신 구약 성서가 역사적으로 증거한다. 예를 들면 몽둥이로 쓴 것에 불과한 세력이 되고 말 것이다(사10:5, 10:15). 

2) 시온의 힘 (7) 

하나님께서 언제나 당신의 역사를 나타낼 때에는 의로운 사람이 나는 곳도 약소국가요, 크게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는 곳도 약소 국가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말씀을 거룩하도록 한 민족도 약소국의 하나인 이스라엘 족이요, 종말의 기록한 책의 숨은 비밀을 만민 앞에 알도록 끔 인봉 개시의 역사를 일으킬 곳도 동방의 해 돋는 곳이라고 계시록은 보여 주었다.

아무리 강대국이 아시아 천지를 뒤흔들었지만 앗수르,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로마는 다 망하고 말았지만 참 시온이란 기독교는 나날이 왕성하고 있다. 칼을 든 강대국은 넘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든 기독교는 세계를 정복하고야 만 것이다. 지금 아무리 북방 적마의 세력이 아시아의 큰 땅덩어리를 집어삼키고 동방 해 돋는 나라의 남쪽, 작은 나라가 남는 이 땅이지만 선지 예언을 비추어 본다면 이사야는 종말적인 기독교 역사는 동방 땅끝 한 모퉁이 해 돋는 곳에서라고 이차 삼차 분명히 말했던 것이다(사41:2-3, 25, 24:15, 46:11).

강대국의 힘을 의뢰한 것은 슬픈 일이라고 본문은 말했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은 자랑하는 일이라고 분명히 사24:14-16절에 말했다. 시온의 힘은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께로 오는 힘이니 이것이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했고 종말의 심판의 권세로써 세계를 정복하고 왕국의 권세로서 새나라를 건설한다. 

 

결 론 

우리는 시온의 힘을 체험한 사실이 증거할 진리가 된다. 만일 기독교가 시온의 힘이 무엇인가를 체험한 사실이 없다면 금일에 기독교는 큰 위기에 위기를 만나서 잠잠히 잠이 들고 말 때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고 독수리 같이 올라가고 피곤이 없이 걸어가는 역사가 있음으로 세계 민족을 새롭게 하고 열왕을 굴복시킨다고 사41장에 분명히 가르쳤다. 이 힘은 받은자밖에 모를 것이다. 

 

 

주의 강림과 제단 문제 

(사 19 : 19 - 22 ) 

 

서 론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는 극도로 인심이 악화되고, 극도로 기근이 오고, 극도로 미혹이 오고, 극도로 두려운 일이 올 것이니 이러한 때에 어떠한 교회가 남는 제단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할 문제이다. 이와 같은 어려운 시험이 올 때에도 남는 제단은 아래와 같은 제단이다. 

 

1. 여호와만을 위한 제단이다 (19) 

여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게 된 것은 교파를 초월한 하나님의 중심에서 이루어진 제단이니 하나님은 그 제단을 중심해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고 이루어지게도 할 것이다. 

 

2. 시대적인 증거가 되는 제단이다 (20)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역사하시되 제단 없이 역사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율법 시대가 지나고 은혜 시대가 올 때 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제단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이었다. 이와 같이 환난이 일어날 재앙시에 시대적인 표적과 증거가 나타나는 제단은 큰 교파를 중심하지 않는 여호와의 제단이다. 

 

3. 압박을 받은 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는 제단이다 (20중) 

이것은 극도로 악화된 사회 극도로 미혹이 심한 세상에서 악화를 이기고 미혹을 이기고 살려는 사람은 필연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니 이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만나게 될 것이다. 

 

4.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세운 제단이다 (20하) 

이 제단에 모인 사람들은 구원자 보호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어 건져 주는 것을 받게 될 것이니 이때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는 것을 악한 세상은 알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제단을 통하여 역사함으로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므로 큰 개혁이 일어날 것이다(22). 하나님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 올 때는 약하고 가난하고 압박 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역사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있되 특히 재림시의 역사는 세계적인 큰 역사가 될 것이다.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 

( 사 19 : 19 - 25 )  

 

서 론  

기독교는 율법 시대를 기하여 모든 선지들이 하나님께로 묵시를 받아 책을 기록할 때에 하나님께 대한 세 가지 역사를 중심하여 기록했다.  

첫째는 너그러이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비밀을 말했고 

둘째는 진노의 날에 보호하는 비밀을 말했고 

셋째로는 새땅 축복을 받는 일을 말한 것이 선지서에 3대 요지가 된다.

그러므로 율법 시대의 성전이 은혜 시대의 다락방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은 제사를 받으실 때에 진리를 따라서 그 시대에 말씀을 순종하는 제사라야 받으시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는 기뻐하지 않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남녀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장소에 성령의 역사가 불로 임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방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맹렬히 다락방 교회를 박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락방 교회는 세계를 정복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져 없어지고 만 것이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은 은혜 시대가 지나고 진노의 날이 올 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제단은 어떠한 제단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단이 없이는 역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이제 어떠한 제단이 되어야 진노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남은 제단이 되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깊이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 만일 이것을 분명히 모르는 자가 된다면 헛된 수고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본문에서 어떠한 제단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1.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기둥이 된 제단이다 (19) 

제단이라는 것은 건물에 따라서가 아니고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기둥 같이 튼튼히 선 사람이 없이 여호와를 기쁘게 할 수가 없다. 3년 6개월 가물 때에 엘리야는 흔들리지 않고 담대히 서서 제단을 쌓고 손들어 기도할 때에 850여명 바알 선지를 쳐부수는 승리를 이루었던 것이다. 제단이라는 것은 다수가 모인다고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요, 적은 수라도 기둥이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종을 통하여 승리하도록 응답을 나리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담대한 사람이 올리는 제사를 기꺼이 받기 때문이다. 

 

2. 표적과 증거가 된다 (20)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할 때에 담대히 부르짖는 제단에 하나님은 오셔서 그 시대 사람이 깨닫도록 표적과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앞으로 남은 교회가 되려 할 때 초자연적인 역사가 표적과 증거로 나타나야만 될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응답함으로만이 사명을 감당하는 제단이 될 것이니 아무리 원수의 압박이 있다 하여도 거기에 굴복치 않고 여호와를 위하여 그 시대적인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할 것이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예배하고 있지만 주님 오실 때까지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라고 보게 된다. 

 

3. 대 승리를 이루는 제단이다 (21-22) 

기독교의 승리라는 것은 개혁을 일으키는데 있는 것이니 이 개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단을 통하여 응답을 내리므로 큰 변동을 일으키는 열매를 보게 된다. 악한 세상을, 평화로운 새시대를 이루는 것은 어느 교파를 중심한데서가 아니고, 인간의 어떤 정치나 무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한 제단을 중심하여 세계 통일의 완전한 평화 왕국을 이루도록 역사하심으로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난제 해결은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없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배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예배를 하나님이 응답하고 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진노의 날에 남은 제단은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바로 알아서 그 뜻에 순종하는 제단이 아니고는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이니 난국을 당한 이 때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바로 쌓는 것이 급선 문제라고 본다. 

 

결 론 

어느 나라나 여호와를 위하여 옳은 제단을 쌓던 사람은 다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어 원수의 나라가 다 이스라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23-25절까지 가르쳤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여호와를 위하여 응답 받는 제단을 쌓는 자라고 보게 된다. 

 

 

인간 종말의 제단 문제 

( 사 19 : 19 - 25 ) 

 

서 론 

인간이라는 것은 종교가 없이 살 수 없고 종교라는 것은 제단이 없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종말에 반드시 있어야 할 제단은 어떠한 제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 시대의 사람에게 역사하실 때에 제단을 중심하여 역사하셨다. 양심 시대 말기의 노아의 제단, 언약 시대 아브라함의 제단, 율법 시대의 유월절 제단, 은혜 시대의 다락방 제단이 있었고 인간종말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을 것을 본문에 말씀하셨다. 인간 종말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은 어떠한 제단이라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중앙 제단 (19) 

주 재림시기에 극도로 인심이 악화되고 경제가 혼란하고 정치가 부패되고 세계가 미혹을 받는 때에 중앙 제단이라는 것은 그 제단을 통하여 재앙의 날에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곳을 뜻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지만 진노의 날에 많은 사람을 구원해 주는 역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교회가 많다. 진노의 날에 영육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있어서는 어느 교파를 중심한 것이 아니고 한 제단이 나타나서 그 제단을 중심하여 역사가 일어나므로 새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나는 여기에 대하여 증거할 말이 있다. 이것은 1964년 9월 5일 밤에 하늘로부터 세미한 음성을 들었는데 그 음성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이 산에 사19:19과 같은 제단 자리가 있으니 그곳을 찾아서 제단을 쌓고 말세의 종을 가르치라는 것이었다. 그날은 현 계룡산 새일 수도원이 있기 전에 이 산에 기도하러 왔던 때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음성을 듣고도 주저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밤에 다시 알려 오므로 마음에 충격을 받고 산을 편답하던 중 지금 새일 수도원 자리를 찾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그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히 나는 믿는 바이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열매를 볼 때에 분명히 이 제단이 중앙 제단이 된다고 확신이 생긴다. 이 제단으로 말씀이 나려 각 나라로 문서 운동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볼 때에 자연적으로 이 제단이 중앙 제단이 될 것은 사실이다.

이 제단을 시작한 것은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이 산을 덮고 불 가운데서 직접 명령이 내리므로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그날부터 단돈 2,000원을 돌 위에 놓고 기도하면서 시작한 것이 1964년 9월 24일 새일 수도원 개척의 날이 된다. 누구든지 이곳에 와서 보면 하나같이 이 말이 믿어질 것이다. 교파를 초월하여 중앙 제단이 있으므로 각 교파의 숨은 종들은 지금도 하나같이 호응하는 바이다. 

 

2. 표적과 증거 (20상) 

언제나 하나님은 그 시대에 역사가 나타날 적에 한 곳에 먼저 역사가 일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그 역사를 따라오게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주님이 재림할 때에 나타나는 역사는 한 곳에서부터 일어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표적과 증거로 보여줄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아무런 역사없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단 중심으로 역사가 일어나되 기둥 같이 굳게 서는 종들로 말미암아 큰 증거가 나타나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 역사를 따라 오게 된다. 

 

3. 구원과 보호 (20하) 

세계 인류가 구원을 받고 보호를 받는 일은 반드시 제단을 중심하여 일어날 것이다. 은혜 시대에는 예루살렘의 다락방을 중심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서 세계를 구원하였는데 이것은 모든 죽은 영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이다. 그러나 여기에 구원과 보호라는 것은 영육을 아울러 구원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을 가르쳤다. 어떤 교파를 중심해서 역사하는 것보다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제단 중심으로 역사하는 것을 종말의 역사라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각 교파에서 새일 수도원을 압박하지만 필연코 승리는 새일 수도원에 있을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현저히 계속으로 말씀이 내리는데 있어서는 현 교계에서 이날까지 알지 못하던 성경의 진리가 햇빛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진리를 따라 역사하시는 것이니 진리가 임하는 제단을 압박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세계 평화 (21-25) 

세계 평화라는 것은 전쟁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말씀대로 역사하시므로 큰 개혁이 일어나는 동시에 어느 나라나 복 있는 자는 남게 될 것이고 그 밖의 사람은 전멸을 받게 되므로 다 하나가 되어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인간 종말이라는 것은 어떤 나라나 어떤 정권을 중심하여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한 제단을 중심하여 여호와 역사하시므로 끝을 맺되 완전한 평화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제단과 구원 문제 

( 사 19 : 19 - 25 ) 

 

서 론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도 있고, 단체적인 구원도 있다. 영혼 구원은 개인적이라면 몸의 구원은 단체적이다. 영혼을 구원할 때는 죄인을 부를 때라면 몸을 구원할 때는 세상의 악인들을 없이 할 때다. 그러므로 단체적인 구원에는 반드시 제단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제단과 구원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하기로 한다. 

 

1. 여호와를 위한 제단과 구원 문제 (19-20) 

오늘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단체로는 진노의 날에 몸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쭉정이와 알곡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진노의 날에 단체적인 구원은 어떠한 시련이 온다 하여도 끝까지 부르짖는 자들이 합심하여 제단을 쌓게 되므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한 제단에 임하여 그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 무장을 갖춘 자들이 남은 종이 되어 끝까지 부르짖는 가운데서 단체적인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한 제단을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게 하시는 것은 그 제단을 중심하여 완전한 표적과 증거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 제단에 나리는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응답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응답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응답도 있고, 단체적인 응답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종말에 몸을 구원하는 응답은 단체적으로 오는 응답이므로 여호와의 제단에 응답이 나리는 역사로만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제단에 나리는 역사로만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하시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할 때는 한 제단 중심으로 참된 종들을 깨우쳐 하나가 되는 역사가 있게 하여 단체적인 구원을 받게 하므로 그 제단을 중심한 단체에 응답을 내리시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알곡만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한 방법이다. 알곡이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자를 말한다. 앞으로 어느 교파나 새 시대에 들어갈 알곡된 자들은 자동적으로 한 제단을 중심하여 뭉쳐지게 될 것이다. 

 

2. 간구와 구원 문제 (21-22) 

진노의 날에 단체적인 구원은 간구가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이미 중생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지만, 진노의 날에 영육이 구원을 받는 것은 조금도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간구하는 기도 응답으로 특별 보호를 받게 되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단체적인 구원은 여호와께서 완전히 고쳐 주는 일이 있음으로서 영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게 된다. 몸의 구원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완전한 몸이 되도록 고쳐 주는 일이 있으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 축복과 구원 문제 (23-25)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은혜라면 몸이 구원받는 것은 축복이 된다. 이 축복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받는 축복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말씀대로 어느 나라 민족이든지 특별히 축복을 받은 자들이 새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축복은 단체적으로 받는 축복이다. 국경의 차별없이 축복 받은 사람들로 한 단체가 되어 새로운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속죄라는 것은 영혼 구원의 역사라면 축복이라는 것은 몸의 구원을 뜻했다. 아담이 순종치 않았으므로 저주받았던 이 땅에 제단 중심으로 복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제단에 대해서 등한해지고 개인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 끝날에 영육이 아울러 받는 구원은 단체적인 구원인 동시에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할 일 

( 사 24 : 1 - 23 ) 

 

서 론 

인생의 제일 큰 목적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가장 귀한 일이며 복된 일이라고 본다. 이제 인류 종말에 진노의 날이 오는 이유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으므로 진노가 옴 (1-13)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실 일은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파하는 일이다. 이 파한다는 것은 말씀을 받아 가지고 세웠던 교회를 파괴하는 행동을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 대 종교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세계 열방에 전파하여 어느 민족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소위 유물론 공산주의가 나오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는 정부가 나오고, 파괴하는 거짓 선지의 교권이 나와서 하나님 말씀은 한 신화로 돌리고 레닌 막스주의의 학설을 학교에서까지 학과로 가르치고 있으며 소위 교회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종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과거로 돌리고 마는 신학이라는 간판 밑에서 인본주의의 학설이 교회를 망치고 있다.

소위 정통이라는 사람들 중에서도 십자가를 믿으면 그 밖의 하나님 말씀은 해석할 탓이요, 각각 달리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전부가 다 하나님의 언약을 파하는 일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말할 때에 그 사람의 말은 해석할 탓이요, 그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그 말을 멸시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언약이라는 것은 한 번 기록하면 일 점도 가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계약서를 쓸 때에도 법칙에서 조금도 가감될 수가 없는데 조물주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각각 해석할 탓이요, 갖다 붙일 탓이라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도 완전한 사람은 한 번 언약을 세우면 조금도 가감하지를 않는데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가감할 수 있다고 한다는 것은 진노를 받을 사람의 하는 말이라고 본다.

나는 40년간 성경을 보는 생활에서 처음에는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을 해 보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본문 그대로 읽어서 짝을 맞추고 읽어서 각 장의 연관성의 원리를 알게 되고, 읽어서 말씀의 목적과 그 방법이 어떻다는 것을 변론하므로 완전한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사야서는 영혼 구원론이 아니고, 진노의 날에 영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원론이라고 분명히 믿게 된다.

이 구원론은 진노의 날에 원수의 세력을 없이할 때에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되 영과 육을 아울러 구원해 준다는 언약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언약을 파하는 자는 진노의 날에 불에 사름을 당하고 말 것이다(5-6) 

 

2. 크게 외치므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함 (14-24) 

가장 큰 일은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 되어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크게 외치는 일이라고 본다. 물로 심판할 때에는 의를 전파하는 노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고(벧후 2:5) 불로 심판할 때에는 동방 바닷가에서부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크게 외치던 사람들이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의 섬들에서는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다.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외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는 것을 뜻했고, 동방에서는 외치는 역사를 하므로 "땅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노래할 것은 궤휼자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지만 여호와 일어나서 교만한 군대를 없이하고 땅의 왕들을 심판하므로 시온산 통치, 다윗 왕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다. 지금 아무리 궤휼적인 공산 세력이 세계를 침투하려 나온다 하여도 이것은 형벌 받을 마귀의 정책이므로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은 사실이다.

지금 크게 외쳐야 할 일은 여호와 일어나서 북방 세력을 쳐서 없이할 것이니 누구든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라고 하여야 할 것이며, 인간들 앞에는 함정과 올무가 있으니 여기에 빠져서 죽지 않으려면 궤휼자의 정책에 속지 말고 시온산 통치 왕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외쳐야 할 것이며 반드시 공산당은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크게 외쳐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크고도 위대한 일은 세계가 불사름을 당하는 날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과거에도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자가 있었지만 진노의 날에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자는 자손 만대에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 종말에 찬송할 일 

( 사 25 : 1 - 12 ) 

 

서 론 

인생이라는 것은 여호와를 찬송하되 그 시대와 역사에 따라서 찬송하게 된다. 가장 복된 일은 인간 종말에 여호와를 찬송하며, 새 시대에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여호와의 진실함을 찬송할 일 (1) 

하나님 말씀을 바로 신앙하는 자들이 언제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게 되는 것은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신다는 것을 찬송하게 된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날이 갈수록 점점 하나님께 대한 찬송보다도 오히려 마음이 멀어지는 생활에서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는 체험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바른 길을 들어가서 사는 생활은 현재나 미래나 항상 가는 생활이 하나님의 진실성을 체험하게 되므로 기쁨으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2. 여호와의 승리의 역사를 찬송할 일 (2-3) 

누구든지 신앙의 정로를 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편이 승리하는 일을 보고 찬송하게 된다. 인간이 볼 때는 강한 사람이 승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최후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신앙하는 자에게 있게 될 것이다. 

 

3. 여호와의 보호를 찬송할 일 (4-5)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환난이 와도 신앙의 정로를 가는 자에게 피난처가 되시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빈궁이 없으며 환난이 없는 것이 아니고 빈궁한 일이 오고 환난이 온다 하여도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므로 더욱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신앙의 정로를 걸어가는 자에게 빈궁이 오는 일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신앙의 목적은 현 사회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새 시대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세상에 목적을 두고 날뛰는 자보다는 빈궁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일은 이 땅에서 부요한 자보다도 더 많이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하나님의 보호하는 역사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4. 여호와의 시대적인 비밀을 알게 되어 찬송할 일 (6-8) 

하나님께서 시대적인 숨은 비밀을 극상 포도주라고 하신 것은 완전한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한 것이다. 이날까지 기독교의 비밀은 이방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요, 인간 종말에는 완전한 열매를 맺는 역사이므로 인간 종말의 숨은 비밀을 포도주라고 한 것이다(사55:1-3).

이사야 성경의 목적은 성도들이 완전히 열매를 맺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 비밀을 분명히 알게 되는 역사는 산을 중심해서 일어날 것을 가르쳤다. 사24:14의 말씀은 시대적인 비밀을 바로 안 사람들이 크게 외칠 것을 가르친 말씀인데, 본 장에 이 산에서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푼다는 것과 동일한 뜻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동방의 산을 중심하여 나타나는 말씀 운동을 일으키는 자는 하나같이 눈물 없고 죽음 없는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5. 여호와의 구원을 찬송할 일 (9-12) 

이것은 끝까지 기다리고 나가던 자들이 완전 승리를 보게 되므로 구원을 찬송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원수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그 세력은 다 없어지고 끝까지 기다리던 자만 남아서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인간 종말에 찬송할 일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참된 신앙의 노선을 가는 사람들이 24장과 같이 마지막 환난이 날 때에 찬송할 것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력으로는 피할 수가 없는 환난이니 땅이 진동을 하며,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환란 중에서 구원함을 받는 자들이 노래할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정로를 가는 자라면 진노의 날에 오히려 찬송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행하시는 일을 노래하게 될 것은 영혼 구원에 대한 찬송이 아니요, 영과 육이 아울러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 종말에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의 받는 축복은 무엇이냐는 것을 목적하고 가르친 것이 이사야서의 요지가 되는 것이다. 

 

결 론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끝까지 기다리던 자들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신앙하는 것보다도, 직접으로 그 역사를 힘입어 구원을 받을 때에 노래하는 일이다. 

 

 

곤핍한 자에게 안식을 주는 여호와의 말씀 

( 사 28 : 7 - 13 ) 

 

서 론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곤핍을 오게 하는 것은 안식을 줄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사28장은 심판기에 극도로 곤핍해질 때에 안식을 주는 역사는 무엇이라는 것을 말할 때에 여호와께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을 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곤핍한 자들이 안식의 복락을 받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곤핍을 당하는 자에게 안식을 주는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곤핍해 지는 일 (7-10) 

심판기에 모든 심령이 곤핍해진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독주를 먹고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에 실수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그들이 서는 강단에 은혜가 나리지 않게 될 때에 그 강단은 자동적으로 속화됨으로써 모든 영들은 극도로 곤핍해질 것을 가르쳤다. 금일에 교계가 이 상태로 나간다면 도저히 새시대를 이룰 수가 없다고 본다.

새시대라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말씀대로 심판이 내리는 것이니 하나님 말씀을 바로 해석치를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이 교계를 하나님은 그냥 두고 심판할 수가 없고 또는 소위 교회의 상부라는 기관에서 참된 종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예루살렘 공회가 예수를 이단이라고 하듯이 오늘의 교회가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한다는 것은 큰 실수라고 본다.  

 

2.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는 일 (11-12상) 

금일에 어떤 신학자들은 이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임해서 아무런 연구가 없이 말씀의 칼, 조직 신학 강의,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성경해석법, 요1서 강의, 새일성가,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계속 발행하게 되는 것을 그 자체가 이단이라고 한다는 것은 너무나 경솔한 말이라고 본다. 내가 지금 매일 같이 책자를 쓸 때에 한 번이라도 내 생각을 집중시킨다면 도저히 입에서 말씀이 나오지를 않고 생각을 집중하지 않고 있어야만 입에서 말씀이 나와서 책자를 쓰게 되는 것을 보면 나 자체는 스스로 떠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성경을 택할 때에도 내 생각을 집중하면 택하여지질 않고 믿고 기도할 때에 입술에 말씀이 나오는 대로 성경이 택하여지고 제목과 서론과 대지와 결론이 스스로 나오게 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내 입술을 여호와의 신이 사용한다고 믿어진다. 하여튼 누구든지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고 자세히 읽어 볼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할 것이다. 

 

3. 듣지 아니할 때에 망하게 된다 (12하-13) 

하나님께서 과거의 선지를 통하여 기록한 글을 다시 알려주는 일이 없이 그냥 심판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지금 혹자는 성경을 모르는 것이 정통이라 또는 해석할 탓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본다. 이 사람이 이사야서를 읽지도 않고 그냥 말씀이 임하는 대로 기록하고 성경을 읽어 볼 때에 성경은 하나도 사람이 달리 해석을 할 것이 없이, 그 본문 그대로 읽어서 완전히 변론을 할 수도 있고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성경이다.

그러므로 내 입술에 임한 말씀이 성경과 같다는 것보다도 성경을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내막의 뜻이 무엇이라고 간단히 알려주는 식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그 글을 읽어서 모를 때에 그 글은 무슨 뜻으로 기록했다는 것을 간단히 말해도 읽어보면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입을 통하여 간단히 그 내용을 깨닫도록 말씀을 나타냈다고 믿어진다.

지금 월간지도 본문을 택할 때에 입에 말씀이 와서 택하고 또는 그 성경을 보아도 내용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모르나 입에 말씀이 임하는 대로 받아 기록하고 보면 그 본문 내용이 대지적으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누구든지 이것을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성신의 훼방죄 중에도 제일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이적을 보고 반대해도 훼방이라고 하였거든 하물며 여호와의 신이 합법적 변론으로 말씀을 내리는데도 이 진리를 대적한다면 본문대로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앞으로 기독교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그대로 믿고 싸우느냐, 강한 이방 앞에 협상을 하느냐 하는 것으로 종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14-16절을 보면 너희 말에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을 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의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 도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느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가르쳤는데 머릿돌 예수로 나타날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절대로 타협적인 노선을 걷지 말라는 것이다. 

 

 

신앙과 예비 

( 사 28 : 14 - 22 ) 

 

서 론 

하나님은 언제나 신앙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급절하게 되지 않도록 예비시키는 것이다. 모든 세상에 되는 일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일이니 참으로 신앙을 가진 자에게 환난을 면할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에게 시대적인 비밀을 알려주고 심판날에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역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또는 아니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문제로 둘 것뿐이다. 준비가 있는 신앙에 들어가려면 본문을 보아 알 수 있다. 

 

1. 경만한 자가 되지 말 것 (14) 

신앙이란 예지와 예정이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니 무슨 일이나 너무 경솔히 하는 자는 돌밭에 뿌린 씨와 같이 되고 말 것이다. 경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신앙을 중심해서 움직이지 않고 자기의 수단 방법을 넣는 것이다(15). 우리는 심판의 돌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앞으로 오는 재앙을 자기 어떤 수단 방법으로 피해 보려고 계획한다는 것은 심판의 돌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망과 언약한다고 한 것은 인간의 마귀 앞잡이 그 세력과 타협하는 것을 말한다. 신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믿고 나가는 것이 신앙이다. 어려운 일을 미리 피해 보려고, 어려운 일을 가지고 오는 원수와 협상을 하는 일은 멸망을 자취하는 음녀적인 신앙이 될 것이다. 

 

2. 극도로 미약할 때 하나님이 역사할 것을 믿어야 한다(사 29:4-5) 

우리는 하나님은 무소불능 하시니 아무리 티끌에서 굴러다니는 신접한 자 같이 남에게 멸시를 받아도 거기에서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역사는 필연코 홀연히 온다는 것을 믿는데서 준비가 된다. 준비라는 것은 인생 자체가 환난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극도로 미약해질 때 떨어지지 않고 나가게 되면 준비에 들어간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3. 마음이 둔해질까 봐 조심하는 생활 (눅 21:34) 

우리의 준비는 심령이 둔해지지 않고 항상 조심하는 마음에서 깨닫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닫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다(눅21:34-36). 주 재림시도 떨어질 자는 마음이 둔해진 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둔해진 자라는 것은 감각이 없는 심령 상태를 말한 것이다. 

 

4.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하는 일 (마 24:44-46) 

누구든지 참된 신앙이 있는 자라면 주님이 다시 올 때까지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해보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날이 가까움을 아는 신앙에서 게을러진다는 일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기의 직책을 감당하는 일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복음 증거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이사야28장은 심판의 대상자를 말했는데 인간 향락에 도취가 된 자,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혼선된 자, 경솔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운데 남을 자는 시온의 도를 바로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가르친 것이다. 누구든지 참된 신앙이 있는 자라면 심판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문은 말한 것이다. 심판이란 참된 알 곡된 믿음을 가진 자를 아끼는 심정에서 오는 심판이니 한 사람인들 급절하게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사28:26-28). 

 

 

잠잠히 신뢰하는 자의 힘  

( 사 29 : 1 - 8, 30 : 15 - 17 ) 

 

서 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위대한 역사를 나타내고자 하실 때에 당신의 사람으로 잠잠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몰아 넣고 인간이 볼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보이도록 하신 후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제 여호와를 의지하고 낙심치 않는 자의 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슬픔 중에 의뢰하는 자의 힘 (29:1-8)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종이 슬퍼하고 우는 심정으로 당신을 의뢰하게 하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택한자의 눈물을 보고 응답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1-2, 사25:8).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눈물없이 못 가는 시련의 길을 주시는 것은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가인에게 죽은 아벨 때부터 언제나 택한자에게는 억울한 눈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한 자를 들어서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를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안되는 환경에 떨어지게 해서 당신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간절하게 하고 다음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둘째 : 아무런 소망 없는 난관에서 홀연히 역사하기 때문이다(3-4).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자가 원수의 세력을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서 음성조차 낮아져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같이 하나님께 아뢰올 수밖에 없게 될 때에 응답을 하신다. 이것은 극도로 미약한 가운데서도 작은 소리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는 동시에 크게 역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미한 소리로 기도를 했더라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리만큼 기도했다면 역사는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셋째 : 강한 대적이 잠잠히 쓰러지게 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이다(5-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이 잠잠히 당신 앞에 기도하는 것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동시에 대적을 당신 앞에서 세미한 티끌같이 불러 가는 겨같이 없어지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떠들 필요는 전혀 없다. 참된 신앙 양심에는 난관을 만나도 아무런 파동이 없이 잠잠히 신뢰하는 자리에서 여호와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2. 침묵 중에 의뢰하는 자의 힘 (사 30:15-17) 

어떠한 어려운 일이 와도 안연한 가운데서 잠잠히 침묵을 지키며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는 원수의 세력이 다 전멸을 당하는 날이라도 그는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잠잠히 신뢰하는 자에게 어떠한 일이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생각밖에 큰 응답을 받게 된다(출14:13). 

아무리 급한 일이 온다 해도 겁을 내지 않고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큰 응답을 내리시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군대가 뒤를 따라 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막혀 큰 위기를 만났을 때 말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였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미리 겁을 먹고 떠드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약한 자라고 본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잠잠히 신뢰하는 힘을 받을 적에 이것은 큰 역사가 올 징조인 것이다. 

둘째 : 오히려 정로를 찾게 된다(사30:20-21). 

주님의 인도라는 것은 조용히 인도하는 것이니 잠잠히 신뢰하는 자에게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게 바른 정로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어려운 일이 닥쳐오는 것은 앞길에 더 올바른 길이 나타날 징조라고 본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팔려 가서 보디발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중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가야 할 정로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모략이었다(사48:17).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자는 당신을 공경한다 하면서 공연히 떠들며 인간 수단 방법으로 불의와 타협을 하고 왕래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안연히 거하며 잠잠히 여호와를 신뢰하면서 그날 그날에 작은 일에 충성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면서 용기 있게 나가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나리는 것이다. 새시대를 축복으로 받을 자는 잠잠히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들이다. 

 

 

여호와를 공경하는 자의 두 가지 노선 

( 사 29 : 13 - 24 ) 

 

서 론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언제나 두 가지 노선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아담의 가정에도 가인과 아벨의 두 가지 노선이 있었고, 노아의 가정에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정에도 두 가지 노선이 있었다. 하나는 축복을 받았고 하나는 저주를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공경하되 그 제사를 하나님 앞에 상달시키는 신앙 노선이 있고 상달시키지 못하는 신앙 노선이 있다. 이제 어떠한 노선에 있는 자라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고 화를 받게 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헛되이 예배하는 노선 (13-16) 

첫째 :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는 일(13-14)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중심하는 자는 입술로만 공경하게 되고 그 마음에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인간 지혜와 지식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다른 사람의 계약서를 놓고 자기 마음대로 변경시킨다면 계약서를 쓴 사람이 변경시킨 사람에게 계약서대로 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계약서인 말씀을 조금이라도 가감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줄 수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완전 계약서를 인간 지혜와 지식으로 변질시킨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무효가 되는 것이다. 

둘째 : 자기의 도모를 하나님 앞에 숨기려 하는 일(15-16) 

어떤 사람이 인간의 어떠한 방법으로 일을 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일을 많이 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음을 받은 물건이 토기장이를 보고 자기의 모양을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언제나 조물주 하나님 앞에 한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위에서 나리는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에 사람들이 조물주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해진 것은 질그릇이 토기장이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니, 이러한 자들은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화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라는 것이 질그릇에 하나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구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다 허사가 되는 것이다. 

 

2. 기쁘고 즐거워하는 노선 (17-24) 

첫째 : 바로 듣고 보게 되는 일(17-18) 

우리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바로 보게 되는 귀와 눈이 열리게 되므로 즐겁게 되는 것이다. 메시야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마음이 교만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서도 알지 못하고 마귀라고 하였고,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도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볼 때에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고,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영생의 말씀으로 깨달아 들었던 것이다.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두운 바리새 교인들은 사도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했고 극도로 미워하고 훼방했던 것이다. 심판기가 올 때에도 인간이 보기에는 귀머거리, 소경 같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책의 말씀을 바로 듣고 깨달으므로 기쁘고 즐겁게 새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둘째 : 겸손하고 빈핍한 자들이 복을 받는 일(19-24)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내리시는 것은 겸손하고 빈핍한 자의 억울한 일을 원수 갚아 주기 위한 것이니 새 시대의 축복을 받을 자는 겸손하고 빈핍한 자라고 하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요, 부족이 있다 하여도 겸손하고 빈핍한 자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중심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공경하는 자들이라 하여도 무조건 응답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요, 언약의 말씀을 따라서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기쁘고 즐거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자가 되려면 인간 지혜와 지식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바로 듣고 바로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기다리시면서 베푸시는 은혜 

( 사 30 : 18 - 33 ) 

 

서 론 

조물주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는 기다리시면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이 은혜는 은혜 시대에 받은 은혜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영과 육이 아울러 받는데 있어서는 영으로 잠간 받는 은혜가 아니고 영원한 축복을 받되 자손 만대에까지 받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녀 중에서도 특별한 축복이므로 다음과 같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1. 진노의 날에 베푸는 은혜 (18) 

진노의 날에 베푸는 은혜는 회개했다는 조건보다도 끝까지 참고 기다렸다는 조건에서 주는 은혜이다. 아무리 은사를 받았다 하여도 시련이 올 때에 떨어지고 마는 것은 쭉정이와 같은 믿음이다. 여러 가지로 시련을 시켜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진노의 날에 만민에게 베푸는 축복의 은혜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는 은혜는 죽은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은혜요, 끝까지 기다리고 참는 자에게 주는 은혜는 중생 받은 사람으로서 지상 축복을 누리는 은혜인데 이것은 잠간이 아니요, 영원한 축복의 은혜가 되는 것이다. 생령된 첫째아담이 잃었던 축복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자가 다시 찾게 하는 것을 진노의 날에 베푸는 은혜라는 것이다. 

 

2. 조금이라도 탈선된 길에 서지 않게 하심 (19-21) 

누구든지 마음이 변치 않고 끝까지 기다리는 자는 아무리 미혹이 많은 흑암의 날이 와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참된 진리의 스승을 만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복을 받을 자는 복된 종을 만나게 되고 화를 받을 사람은 화가 있는 거짓 선지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본 장 10절 이하를 보면 버림의 자식들이 참된 선지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하면서 타협적인 노선을 걸을 때에 높은 담이 무너지듯이 질그릇이 파쇄되듯이 망하고 말 것을 가르쳤다.

심판기의 경고인 심판의 다림줄의 말씀을 싫어하고 거짓 선지의 감언 이설을 따른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되므로 진노의 날에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련이 와도 끝까지 참고 나가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여 조금도 미혹을 받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3.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됨 (23-26) 

새시대의 축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땅의 소산이 풍성함(23-24) 

둘째 : 높은 산 위에도 시내가 흐르게 됨(25) 

셋째 : 해가 칠 배나 빛을 발하므로 기후가 변천됨(26) 

이 땅에서 큰 축복을 받는 자라야 자손 만대에까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영혼 구원을 목적하고 나리는 것이 아니고 지상 축복을 목적으로 해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축복을 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하는 것이다. 

첫째 : 진노가 빽빽한 연기 같이 일어나게 함(27) 

둘째 : 열방을 까불어 미혹되게 함(28) 

셋째 : 유월절과 같은 역사가 있게 함(29) 

넷째 : 북방 세력이 낙담하고 망하도록 여호와께서 치심(30-33)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역사하시는 것은 끝까지 기다리는 자만 이 땅에서 은혜를 받고 큰 축복을 받는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첫째 : 극도로 까불어 보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떠한 시련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둘째 : 극도로 미혹을 시키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의 종을 만나는 것을 큰 축복으로 알고 이말 저말 듣지 말고 정로를 향하여 나가야 하는 것이다. 

셋째 :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애굽을 치듯이 북방을 칠 것이니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것 없이 여호와만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야 할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주기 위하여 바로를 들어서 강하게 쓰듯이 심판기에도 끝까지 기다리는 종들에게 큰 축복을 주기 위하여 북방 세력을 강하게 들어 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북방 세력을 낙담하도록 역사하시는 동시에 전부 소멸시키는 일이 있으므로 끝까지 기다리는 자가 복을 누리는 새시대가 오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여 생령이 되게 하시고 간교한 뱀으로 미혹을 시켜 보신 것은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순종하는 자를 진실한 자라 인정하고 그들로 큰 축복을 주어 영광스러운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담은 미혹을 이기지 못했으므로 흙으로 돌아갔지만 종말에 끝까지 기다리고 참는 자로 지상에 큰 축복을 받을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하나님 보호로 승리 

( 사 31 : 4 - 9 ) 

 

서 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보호없이 인력으로 승리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은 조금도 하신 것이 없고, 언제나 선지들에게 인간 종말에 될 일을 말씀하실 때에 아무리 북방 원수의 세력이 강하지만, 당신이 친히 백성을 보호함으로서 승리한다고 하셨다.

선지서는 이스라엘이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의 세력을 이길 수가 없게 될 때에 모든 선지에게 원수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지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므로 너희 시온이 이기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사야 당시에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요, 인류 종말에 심판과 새시대를 가르친 말씀이다.

이제 하나님의 보호로 승리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보호의 역사 (4-6)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한 시온을 위하여 싸워 주는 것을 약속할 때에 사자가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리듯이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보호하시겠다는 말씀이 없어도 하나님께 호소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보호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나타난 데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믿지 않고 이방적인 세력과 타협을 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무시하는 일이므로 진노의 날에 아무리 시온의 자녀이며 종이라 하여도 책임을 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굳게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만이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2. 인간 무력을 초월한 역사 (7-8)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들어서 북방을 승리케 하시는 것은 인간의 무력을 초월한 역사로 하시되 북방이 도망을 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에 우리가 북방 세력을 무력으로 쳐서 물리치고 승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북방 앞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이므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아무리 북방의 세력이 승리할 것 같이 보인다 하여도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살 길은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성경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표어를 가지고 이 민족을 깨우치는 일이 있어야만 한다. 만일 이러한 일이 없다면 하나님의 큰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3. 기호를 인하여 놀라게 하는 역사 (9)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종들을 통하여 승리케하는데 있어서는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보다도 깃발만 들어도 그 깃발을 보고 원수가 떨도록 역사하시겠다고 하셨다. 기드온을 들어 쓸 때에도 횃불을 들게 하여 적군을 물리쳤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에 역사를 일으킬 때에도 거룩한 기호를 보고 북방의 강한 세력이 떨게 되는 것은 여호와 친히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기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어떤 산상에서 3일간 철야 기도를 하였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십자가의 기호가 내 눈앞에서 날리는데 푸른 깃발에 은빛 십자가의 기호였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기도할 때에 알려 오기를 북방 세력이 저 깃발 앞에서 망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주셨다. 이 노래를 한 절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환난의 고통을 막을 자 누구뇨. 모든 것 완전한 주 예수뿐일세 완전한 승리를 이루운 권세는 주 예수뿐일세” 하는 노래를 주시면서 너는 북방을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북방을 이기는 일은 인간의 정권이 아니요, 주 예수 뿐이라고 하시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십자가의 기호를 반석 위에 꽂고 새일 수도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보호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요,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절망 상태에 있을 때에 필요한 것이다. 오늘에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용기 있게 싸워 나가야 한다. 

 

 

기독교 종말의 완전 역사 

( 사 32 : 1 - 4 ) 

 

서 론 

기독교의 역사라는 것은 지상 통치의 역사를 완전 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날까지의 역사는 지상 통치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계적인 민족 중에 택한자를 찾으시는데 불과한 역사이지만 종말의 완전 역사는 의로 통치하는 시대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 종말에 역사라는 것이다. 완전 역사라는 것은 사람을 억지로 구속시키는 것으로서가 아니고 인력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을 뜻한다. 

 

1.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는 역사다 (1-2) 

아무리 광풍과 폭풍이 불어오고 아무리 메마르고 곤핍한 일이 온다 하여도 거기에서 피해를 당치 않고 나가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려운 환경이 오게 하는 것도 택한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한 목적이니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인력으로서 당할 수 없는 일이 올 때라고 본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략적인 방법이니 어려운 풍파가 일어나는 것은 당신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려운 난관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맛보게 되므로 영원한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인도하는 길은 어려운 일이 없다 하는 것이 아니요 광풍 같이 폭풍 같이 불어오는 환난에서 피할 길이 있고 아무리 메마른 땅에도 만족히 마실 물이 있게 하고 곤핍한 땅에서도 새로워지게 하는 힘이 있으므로 진정한 신의 능력을 체험한 자 만으로 새로운 왕국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 보고 듣는 자에게 만족을 준다 (3) 

언제나 완전이라는 것은 보고 들을수록 만족함을 준다. 완전치 못한 것은 처음에는 좋게 보이나 자세히 보면 볼 것이 없고 처음에는 듣고 싶으나 자세히 들을수록 더 들을 것이 없는 것이지만 완전이라는 것은 처음 보는 것 보다 볼수록 더 볼 것이 있고 들을수록 더 깨달아 지는 것을 기독교의 종말의 완전한 진리라는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소위 신교국가 라는 나라들이 모이는데 힘을 잃고 주일날 낮 예배만 드리고는 다시 모이지를 않는다는 것은 강단에서 완전한 진리를 가르치지 못하는 일이 있게 되는 동시에 들으나 마나 한다는 싫증을 낼 때에 소위 세속주의라는 신학까지 나오게 된다. 우리는 이때에 들을수록 볼수록 은혜가 되고 만족해지는 역사가 없다면 교회는 이 시대에 필요 없는 기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완전 역사를 뜻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대 사람에게 완전한 것을 주는 것이니 지금 과학 문명을 자랑하는 인간들에게 더욱 만족을 주는 진리 운동이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이다. 

 

3. 조급한 마음에 지식을 준다 (4상) 

사람이라는 것은 공연히 마음이 조급해질 적에 큰 과오를 범하게 된다. 조급은 마귀 시험을 받는 일에 문을 열어 주는 일이다. 에덴동산의 아담 하와가 타락한 동기가 간교한 뱀의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시험을 받아 하나님 앞에 물어 본 일도 없이 선악과를 먹게 되므로 인류 타락의 시발점이 되었다.

기독교의 신앙심이라는 것은 무조건 무슨 일이나 급하게 서두는 것은 언제나 마귀 올무에 걸리는 행동이라고 보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가 과학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할 때에 완전한 진리의 지식이 없는 인간들이 과학 만능을 부르짖는 마귀 소리에 미혹을 받게 된다. 금일에 완전한 신앙 지식을 가진 자라면 이 시대를 바로 분별하는 동시에 시대적인 진리 지식에 입각하여 마음에 조급이 없는 완전한 인격을 소유한 성도의 생활에서 시국 난제를 해결할 지식을 성서에서 완전히 찾게 되는 일을 완전 역사라 하는 것이다. 

 

4. 말을 분명히 하는 자가 된다 (4하) 

오늘에 기독교 강단에서 말을 분명히 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고 말하지 않은 것 보다 못한 역효과를 주는 일이 너무나 많다. 설교가 영을 살리는지 죽이는지를 모르고 무조건 떠든다는 것은 예배를 망치는 설교가 될 것이다. 분명한 말을 못하는 자의 강단 생활은 자신조차 흑암에 빠지는 일이 된다(사8:20).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합리적인 변론이 구비된 글이다. 어떤 자들이 하나님 말씀은 아무렇게 각각 해석할 탓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말이라고 본다.

사45:19을 보면 나는 흑암한 곳에서 은밀히 말하지 않았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찾으라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진리를 주지 않고 무조건 나가서 증거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종이 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분명한 말을 못하면 완전한 인격을 가진 자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에 기독교의 완전 역사는 신자로써 분명한 말을 하게 될 때에 마귀의 흑암은 물러가고 천사는 같이하므로 백전 백승의 용사의 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결 론 

우리 인생의 참된 행복의 세계를 이루는 것은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완전 역사로만이 완전한 인격을 찾게 되는 동시에 완전한 열매를 이루는 자로써 새로운 의의 통치시대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 종말의 완전 역사라는 것이다. 

 

 

영원한 평안과 안전 

( 사 32 : 15 - 20 ) 

 

서 론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역사하는 목적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평안을 주는 동시에 안전하게 모든 것을 이루어 놓는 것을 하나님은 영광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슬픔은 우리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택한자가 영원히 평안을 누리는 일이다.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우리에게 주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성신을 부어 주심 (15) 

사람이라는 것은 성신을 부어 줌을 받기 전에 참된 평안을 소유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사단과 싸우는 생활에서 사단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완전하게 창조한 것이 아니고 생령된 사람으로 성신을 부어 주는 역사를 받으므로 완전한 인격을 가질 수 있게 창조하신 것이다. 인간의 자격으로는 성신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만 왕의 왕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신을 부어 주는 역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자기의 소유가 된 자에게 성신을 부어 줄 책임이 있고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를 받은 자는 성신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요3:34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라고 하였고 딛3:6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준다고 말씀했다.

성신은 죄사함을 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행2:38). 그리고 말세에 남종, 여종에게 부어 주는 역사도 있다(욜2:29). 독생자의 피로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는 일을 속죄 은혜라 하는 것이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주기 위해 성신을 부어 주는데 있어서는 완전한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 

 

2. 공평과 의로 새땅을 이루심 (16) 

참된 평안이 없는 세상이 된 이유는 공평이 없고 의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소위 유물론 공산당이 공평하게 살도록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공평이라는 것은 성신 받은 사람들이 공평으로 정치를 하고 의로 통치할 때에 참된 평안의 안식을 누리게 된다. 사람이 스스로 공평을 이룰 수가 없다. 이것은 성신을 받은 사람들로 하나같이 성결하고 하나같이 지혜롭고 하나같이 겸손하게 되어 모여질 때에 공평이라는 것은 필연적인 열매가 되고 필연적으로 의의 통치 시대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참된 공평과 의는 성신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고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3. 화평의 집을 이루심 (18) 

다시는 전쟁이 없고 원수가 없고 마귀가 없는 새시대이니 모든 집은 화평으로 이루어지고 부락마다 조용히 쉬는 안식의 처소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화평의 집을 이루지 않고는 절대로 축복을 나리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평의 집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련을 통과시켜서 성신 받은 종들로 말미암아 화평한 집을 이루므로 무한한 축복이 충만한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참된 화평은 성신의 역사를 받은 자만 가지게 되고 성신의 역사를 받은 자라야 화평의 나라를 이루게 된다. 이날까지는 하나님께서 화평의 집을 이루기 위하여 악의 세력을 들어서 쓰시는 일도 있었다. 알곡을 모으기 위하여 막대기로 두드리고 키로 까불듯이 인간 종말에 악의 세력이 일어나서 큰 환난이 있는 것은 여기에서 남은자로 화평의 집을 이루자는 목적이다. 

 

4. 파괴시키고 복을 누리게 하심 (19-20) 

지금 이렇게 부패한 죄악의 도성을 그냥 두고 평안한 시대를 이룰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죄악의 도성은 완전히 파괴시키고 남은자로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결 론 

가장 평안하고 완전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성신을 부어 주어 그 인격을 이루어 놓은 후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부어 주는 일에 강권 역사를 나리고 계시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보배 

( 사 33 : 1 - 6 ) 

 

서 론 

인생은 무엇이 참 보배인가 하는 것을 바로 찾는 것이 없다면 허공을 치는 허제비에 불과한 생활일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무엇이 보배라는 것을 가지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로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보배라는 것을 아는 자는 인간에 심히 적다는 것은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보배는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 본문 성경으로 알 수 있다. 

 

1. 참된 평안이 있다 (6상) 

하나님께서 이 평안을 말한 것은 본 장 11-12절과 같이 세계 민족의 호흡이 불이 되고 불에 굽는 횟돌 같이 되는 종말의 환난이 올 때 평안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종말에 불타서 남은자가 적게 될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참 평안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16).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시대를 따라 평안이 있다. 그러나 특히 완전한 평안이라고 하는 것은 종말에 세계가 전멸되는 환란이 올 때 완전한 평안은 그때 있다는 것을 본문 성경은 가르치는 것이다.

금일에 인간들은 은과 금이 참 평안인줄 알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선지자의 묵시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종말에 인간이 불타질 적에 남은 종 남은 백성이 되어서 참된 안식의 시대를 축복으로 받는다는 것을 목적으로 말한 것이다. 

 

2. 구원  

이 구원이라는 것은 영혼만을 구원하는 것을 가르침이 아니다. 온 세계가 황폐화되는 환난 재앙의 심판이 있을 적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아서 새시대의 축복을 받는 구원이다(21). 이것은 전 가족적인 구원이 되는 것이다(사49:25). 노아 때와 같은 구원이다. 하나님이 위엄 중에 함께 하여 피난처에 보호를 받는 구원이다. 

 

3. 지혜 

지혜는 인간적인 세계 사람의 지혜가 아니요, 하나님께로 온 지혜를 가르친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어리석게 보이나 세계가 불에 살라지는 그날에는 제일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말할 것이다. 단12:3-10을 보면 지혜로운 자는 바로 깨달음이 있으므로 별과 같이 빛난다고 하였다. 인간 지혜는 오히려 자기를 속이는 일이 되고 만다(사5:21). 

 

4. 지식 

인간 지식이라는 것은 현실주의에 국한된 지식이다. 그러나 이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이니 현실을 초월한 지식이므로 지식을 가진 자는 앞으로 될 일을 아는 지식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친 말씀이다. 세계를 정복하는 지식은 이 지식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식을 줌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 머리 속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무한광대하신 조물주의 완전한 지식이다. 불타는 날이라도 그는 살 길을 바로 찾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과학적인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는 노력하나 이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심히 적다는 것은 인간 두뇌로서 감히 연구할 수 없다는 세계를 아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결 론 

우리가 만족한 것은 만족을 줄 만한 보화를 가진 자에게만 있다. 예를 들면 알곡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보화가 있으니 새로운 봄이 올 때 다시 새로운 시대를 볼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알곡될 신앙에 참된 보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가지는 보배니 평안과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일어나야 할 때 

( 사 33 : 7 - 16 ) 

 

서 론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실 때도 있고, 일어나실 때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아 죄인을 위해서 화목 제물이 되시고, 죄인을 위해서 대제사장이 되어, 항상 하나님 앞에 대언 기도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당신과 인간사이에 화평을 누리는 것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도 기뻐하시는 것이다.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기다리는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아무리 악한 자들의 박해가 있다 하여도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므로 잠잠히 계신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일어나야 할 때는 어떠한 때라는 것을 본문을 들어서 증거한다. 

 

1. 하나님의 대적이 조약을 파하는 때이다 (7-9) 

하나님께서 대적을 들어 환난이 오게 하시면서, 친히 일어나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싸워 주셨다는 것이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당신의 자녀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않는 자는 대적에게 맡겨서 죽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자는 아무리 대적이 강하여도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해서 그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면서 인간 종말에도 그렇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본문을 보면 인간 종말에 가서 얼마동안 세계 평화를 위한 조약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때는 하나님의 대적을 들어서 그 조약을 파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적과 평화 조약을 맺던 사람들은 다 비참한 가운데 떨어질 것을 가르쳤다. 용사가 부르짖으며, 사신들이 곡하는 것은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을 멸시하고 사람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이 땅이 완전히 황폐화되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평화를 위하여 대적에게 협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오히려 슬퍼할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때에 그 앞에서 책망을 받지 않을 일을 해야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대적인 공산당과 평화를 하기 위하여 그 사상을 용납한다면 도둑에게 자기가 갖고 있는 보물을 보여주면서 “내 것은 훔쳐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같다.

지금 하나님의 대적은 소위 평화 조약이라는 것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적이 평화 조약을 깨쳐 버리고 나오는 것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는 것을 더 큰일로 알고 사상을 지켜야 할 것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적과 평화를 해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 들어가는 사람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평화라는 것은 멸망을 자취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2. 호흡이 불이 되는 때이다 (10-12) 

인류 종말에 비참한 일은 호흡이 불이 되어 세계를 삼키는 일이라고 하였다. 오늘에 와서 세상이 되어지는 일을 본다면 이 본문의 말씀이 분명히 응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날까지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이 말씀도 글자 그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공기가 불이 되는 전쟁이 무서워서 대적과 평화를 하자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다.

호흡이 불이 되어서 세계 인류를 삼키는 환난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는 것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어리석은 인간들이 원자의 불은 무서워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에 사름을 당하게 될 멸망의 자식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이러한 시국을 만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할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의롭게 행할 것 

둘째 : 정직히 말할 것 

셋째 : 불의한 재물을 가증히 볼 것 

넷째 : 뇌물을 받지 않을 것 

다섯째 : 악한 말을 듣지 말 것 

여섯째 : 악한 일을 보지도 말 것 

 

3. 물과 양식을 공급해야 될 때이다 (16) 

하나님께서 이날까지는 죄인을 부르기 위하여 의로운 사람이 악인에게 압박을 당해도 잠잠히 계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일어나실 때에는 악한 사람은 버리고, 의로운 사람만 보호하여 물과 양식을 공급해 주시기 위하여 역사하신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여호와께서 물과 양식을 공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당신의 백성을 환난과 재앙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보호가 있어야 하는 동시에 물과 양식을 공급해야만 되는 것이다.

과거 예언적인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도 40년 동안이나 물과 양식을 공급해 준 일이 있었다면,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물과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것은 원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세상이 불에 사름을 당할 시기가 왔다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조금이라도 대적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에서 특별 보호를 받을 인격이 이루어지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적이 두려워서 협상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진노를 받을 행위이다. 

 

결 론 

우리는 이 때를 말씀에서 바로 알아야 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말씀에서 바로 알아야 하며, 우리가 가져야 될 인격도 말씀에서 바로 찾아야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나가야 할 방향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대적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 사상에서 나가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 책과 인생의 사명 

( 사 34 : 16 ) 

 

서 론 

하나님께서 택한자를 들어서 쓰는데 있어서는 책이 없이 역사하신 일은 없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되어진 일은 책을 이루기 위한 역사이라면 신약 시대에는 그 책대로 행하는 역사이다. 완전한 책이라는 것은 세 가지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첫째 : 완전한 역사가 있어야 하고, 

둘째 : 완전한 법이 있어야 하고, 

셋째 : 완전한 예언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책에는 완전한 역사가 있는 동시에 그 책을 법대로 사람에게 기록하도록 하였고 앞으로 될 일을 기록하도록 한 것이다. 선지 시대에 된 일은 그때의 역사도 여호와의 책이요, 그 때의 법과 예언이 완전히 기록된 것이 여호와의 책인 것이다. 여호와의 책과 인생의 사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기록하는 사명 (계 10:7)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에게 복음을 전하시었다고 하셨다. 이것은 그 복음을 선지자 자신이 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전한 복음을 받아 기록했다는 뜻이다. 복음을 받아 기록하는 선지 시대에 되어지는 일은 선지들이 받아 기록한 일이 이루어질 때에 될 일을 증거로 보여준 것이다(사46:10).

하나님은 언제나 글을 기록할 사람들을 그 글을 기록할 수 있는 위치에다 놓고 그때에 당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동시에 앞으로 될 일을 복음으로 기록하도록 한 것이 선지서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확증적인 언약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해 주기 위한 목적이다. 너무나 어리석고 몽매한 인간들에게 아무런 증거가 없이 말씀만 하면 도저히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증거를 보여주면서 여호와의 책을 기록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2. 전하는 사명 (사 42:6) 

이날까지의 기독교 사명은 선지서를 전해 주는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날까지 모든 종들이 이방의 빛이 되도록 역사한 것은 선지서에 이방의 빛이 된다는 정도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 전체의 책을 전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는 것은 빛이다. 어두운 마귀의 권세 아래서 해방을 받고 빛을 따라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녀가 되게 하는 역사는 선지서에 기록된 대로 역사하기 위한 목적이다. 마24:14를 보면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했다. 천국 복음은 이방의 빛이 되는 복음이다(사9:1-2). 

 

3. 자세히 읽고 듣고 지켜야 될 사명 (계 1:3, 계 22:7, 17:19, 사 34:16) 

오늘날 기독교는 선지서를 자세히 읽어서 깨달아 증거하므로 듣는 자가 자세히 듣고 환난과 재앙을 면하게 되는 사명을 해야 할 때이다. 지금은 선지서의 주석이 필요 없고 선지서의 본문대로 자세히 읽고 그 경고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시기를 깨닫고 자기의 부패를 깨닫고 돌진해 나갈 노선을 깨달을 때가 왔다. 선지서를 기록할 때에 증거로 보여준 일은 오늘에 세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완전히 끝을 맺는 심판기로 들어가는 것을 밝히 알아 다시 예언해야 될 시기가 이때이다.

계10:10-11에 사도 요한은 작은 책을 꿀 같이 먹고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계시로 받았지만 11:1 이하를 보면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을 틀림없이 가르쳤다. 왜냐하면 15절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고 한 것을 보아서 세상에 그리스도 왕국이 이루어질 때에 일어날 역사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귀 미혹이 극도로 강한 때가 올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책에 빠짐이 없이 기록하게 하신 것은 천국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심판과 새시대를 가르쳤다.

미혹이 많을 것을 세밀히 가르쳐 자세히 읽어보면 미혹도 받지 않고 환난과 재앙 속에서 살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 여호와의 책이다. 만일 미혹이 많은 이때에 성경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야만 될 형편에 있도록 여호와의 책에 대강 기록되었다면 현 교회는 큰 위기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과 선지서를 자세히 읽어서 얼마든지 변론을 할 수 있고 마귀의 흑암을 뚫고 나가는 봉홧불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말 저말 듣지 말고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는데서 짝을 맞추어 분명히 증거할 수 있고 얼마든지 여호와의 변론을 가지고 외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진리의 신이신 동시에 문서를 기록하는 법이 있게 하고 그 법을 따라서 준행하시는 심판자이시다. 그러므로 율법에 기록한대로 아들에게 징벌을 내리시고 아들을 믿는 자에게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선지서에 기록한대로 세상에 징벌을 내리시고 남은자로 새시대를 이룰 것이다. 여호와의 책과 인생의 사명이 무엇인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때는 이때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 

( 사 34 : 16, 35 : 1 - 10 ) 

 

서 론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기뻐하시는 동시에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구속이라는 것은 근본적인 아름다움을 다시 찾게 하는 것을 기독교의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나 사람을 창조할 때 아름답게 창조했고 아름답게 살게 했고 아름답게 열매를 맺도록 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다시 찾는 것을 하나님의 신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이라는데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은 아름다운 말씀이 있다 (사 34:16, 40:9) 

하나님은 아름다운 일을 하시고자 할 때 아름답게 일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하나도 빠진 것이 없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꿀송이보다 더 달다는 것은 그 속에 진리의 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많은 서적이 있기는 하지만 참으로 사람에게 아름다운 진리를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책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맛이 나고 더욱 진리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는 말씀을 통해서만이 온다.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고 짝을 맞추는 자에게 아름답게 역사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서만이 역사하기 때문에 말씀을 사모하고 듣고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의 미를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그 책을 자세히 읽기를 싫어한다면 이 사람은 아름다움이란 것을 맛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는 바리새교인들이 성경을 읽었지만 그 말씀을 자세히 읽지 않고 자기의 직업적인 교훈으로만 읽었기 때문에 성경을 듣고도 멸망을 자취했던 것이다. 금일도 많은 사람이 성서를 들고 있지만 자세히 읽어보고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는 것을 맛보는 자 외에는 하나님은 새 땅을 그에게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한 것은 아름다운 새시대를 축복으로 받을 자는 내 말을 깨달아 듣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2. 역사가 아름답다 (사 35:1-12) 

1) 땅을 아름답게 함 

하나님이 인간의 범죄로 저주받았던 땅을 다시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새시대라 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땅을 근본적으로 이렇게 했다면 하나님은 아름다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극도로 고생에 고생을 해야만이 땅의 소출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땅을 창조한 목적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 없고 그 땅 자체가 아름다워서 사람을 돕기 위한 본질이 있었던 것이다. 

2) 사람을 아름답게 함(3-6) 

사람이 세상에 창조를 받을 때 지금과 같이 창조했다면 하나님은 아름다운 하나님이 아니다. 사람이 약하고 어리석고 둔한 것은 본체적인 인간의 근본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약한 손을 강하게, 떨리는 무릎을 굳게, 겁내는 자에게 굳세게, 두려워하는 자에게 참된 평강을 준다는 것이며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걸어가는 것과 혀로 노래하는 것 전체가 완전 개조가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사람의 육이 죽고 영혼만 천당 가는 것은 예수만 바로 바로 믿으면 되지만 육이 살아서 새시대에 가는 사람은 전부 그 몸을 개조시켜서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가르킨 것이다.  

3) 모든 식물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욜3:18, 사49:9) 

하나님께서 식물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근본적인 에덴 동산에 있던 그 식물로 다시 회복해 놓는 것이니 하나님은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는 식물을 주는 것이다. 물도 아름답게 하여 마시게 하고 열매도 아름답게 하여서 먹게 한다는 것이다. 

4) 동물이 아름다워짐(사65:25) 

하나님은 동물을 창조할 때 사람을 도우라는 아름다운 동물로 냈던 것이다. 사나운 짐승도 아무리 힘이 세고 날새지만 그때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힘과 용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 동물이 사람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해치고자 하는 것은 동물도 본성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하나님이 동물을 낼 적에 사람을 괴롭히라고 냈다면 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근본적인 창조는 의를 위해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