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 영적 지도자가 되는 길( 출 2 : 1 - 15, 3 : 1 - 8 )
3.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출 3 : 1 - 14 )
시 편
2. 아름답고 영광이 되는 일( 시 8 : 1 - 9 )
3. 환난 중에 복된 자가 되자( 시 34 : 7 - 22 )
4. 입으로 범죄치 않는 자의 기도( 시 39 : 1 - 13 )
5. 입술로 새 노래를 부를 자격( 시 40 : 1 - 10 )
6. 낙망 중에서 오히려 찬송하는 자가 되자( 시 42 : 1 - 8 )
7.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할 일( 시 42 : 8 - 11 )
8. 진리와 인도( 시 42 : 9 - 43 : 5 )
9. 주께서 기뻐하는 연고로 승리( 시 44 : 1 - 8 )
10. 환난을 두려워 아니할 인격( 시 49 : 1 - 8 )
11. 환난 날에 긍휼 함을 받을 인격( 시 59 : 1 - 17 )
12. 환난 때 영화롭게 되는 자( 시 91 : 1 - 16 )
13. 주께 징벌을 당하며 교훈을 받는 자의 복( 시 94 :10 - 23 )
14. 성도의 고난과 기도( 시 102 : 1 - 28 )
15. 여호와의 말씀이 응하는 길( 시 105 : 10 - 25 )
16. 여호와께서는 인자한 신이시다( 시 118 : 1 - 7 )
17.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의 승리( 시 118 : 5 - 24 )
18. 하나님의 백성의 삼대 축복( 시 144 : 12 - 15 )
잠 언
1. 재앙 받을 행위란 무엇인가( 잠 1 : 20 - 33 )
2.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요소( 잠 2 : 1 - 12 )
3. 지혜와 지식을 간구하는 자가 되자( 잠 2 : 1 - 22 )
4. 지혜를 진주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이 되자( 잠 8 : 11-21 )
5. 지혜로 낙을 삼는 자가 되자( 잠 10 : 23 )
출 애 굽 기
1. 택한자의 형통
( 출 2 : 1 - 25 )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을 향하여 형통하도록 역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일이 있되 그 일을 통하여 오히려 더 형통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는 두려운 일이요, 원망할 일이요, 실패를 당하는 일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택한 자를 향하여 더 유익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일이다.
이제 택한 자의 형통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정한 때에 출생케 하심 (1~3)
인간이 볼 때에 모세가 출생한 때는 불행한 때였다. 왜냐 하면 바로가 이스라엘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버리는 정치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모세같이 위대한 인물이 날 때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났다는 것은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옥동자를 낳은 모세의 부모가 3개월을 숨겨서 기르다 더 기를 수가 없으므로 죽으라고 원수 앞에 내 놓는다는 것은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같이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된다는 것도 불행스러운 일이요 악한 민족에게 이유 없이 아들을 빼앗긴다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을 원망할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일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없다면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그 민족에게 괴로움을 받는다는 말씀이 응하지를 않으므로 괴롭게 한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되 하나님의 징벌이 애굽에 올 때가 온 징조이다. 모세의 부모가 장차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시킬 영도자가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치도 못할 일이다.
극동 난제가 닥쳐 온 오늘 우리가 이 때에 났다는 것이 불행스러운 일 같으나 정한 때에 가장 복된 민족 중에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우리가 지금 동방 땅 끝에 출생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모세가 애굽의 악정 아래에서 출생한 일과 같이 된 것이며 모세에게 형통한 일이 있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있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 복된 길로 인도하심 (4~10)
옥동자를 나일강변에 버리는 그 슬픔 인간으로써는 극도로 낙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볼 때는 모세가 버림당한 것 같았으나 실지는 복된 길을 가게 되었다. 쓸쓸한 가정에 태어난 모세가 화려한 바로의 궁궐에 들어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화려하게 자라났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품에 안고도 어머니가 아닌 것처럼 하여 아들을 기를 때에 무엇보다도 숨은 기도가 많이 있었을 것이고 숨은 교훈이 많았을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세상 학문을 배우는 것도 특별한 교훈을 받게 되었고 사상적, 종교적인 교훈도 어머니에게 특별히 받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도탄 중에서 모세를 기르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서 길렀다면 그렇게 안타까운 기도가 어머니에게 없었을 것이고 안타까운 눈물의 교훈이 없었을 것이다. 가장 어린 소년의 축복은 어머니의 품에서 기도로 길러주는 일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남의 나라 사람보다도 왜정 시대와 공산 정권 아래에서 눈물겨운 기도를 하며 자라난 일은 큰 축복이 될 일이라고 본다. 인간의 복된 길이라는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숨은 비밀에서 있는 것이다. 숨어서 기도하고 숨어서 성경을 보고 숨어서 주의 일을 받드는 그 심정! 이것이 얼마나 간절한 심정이라는 것을 나도 체험한 바이다.
우리는 복된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배워야 한다. 나는 기도 생활 40년 동안에 여러 가지 고통을 겪어 온 것은 날 택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복된 길이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깨닫게 된 것이다.
3. 실패의 길 같으나 성공의 길로 인도하심 (11~22)
만일 모세가 애굽 사람을 쳐죽이는 일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일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힘을 믿고 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인간 감정으로 민족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응답의 역사가 있으므로 민족을 살리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민족을 지도할 것인데 혈기에 속한 육의 사람으로 민족을 지도하는 일은 실패를 당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모르는 모세에게 쓸쓸한 미디안 목자의 생활 40년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거룩한 장막이 되었다.
우리도 신과 같은 사람이 되기 전에 도저히 나가 일할 수 없는 시대를 만났다. 그러므로 과거에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택한 사람에게는 성공을 가져오는 길로 옮겨지는 형통의 길이 되는 것이다. 모세가 실패를 당하여 도망하던 길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패를 당한 모세의 40년 생활은 세 가지로 형통했던 것이다.
첫째 : 영의 사람이 된 것이요,
둘째 : 복된 가정을 이룬 것이요,
셋째 : 원수의 손을 벗어나는 피난처가 된 축복이었다.
우리도 앞으로 가는 길이 이와 같이 형통이 있게 될 것을 확신하고 세 가지 축복을 받아야 한다. 형통이라는 것은 자기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결 론
모세가 거친 바로 궁궐의 40년, 미디안 40년이라는 기간은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지루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400년이라는 기간을 정해준 때가 차기까지 모세를 길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한 때에 써야 할 택한 사람은 인간이 볼 때 지루한 것 같으나 쓸 만한 사람이 되도록 기르는 기간을 두고 모든 일이 형통케 하시는 것이다. 조급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낙심하고 원망하는 일을 하게 되지만 택한 백성이 부르짖는 호소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다.
2. 영적 지도자가 되는 길
( 출 2:1-15, 3:1-8 )
서 론
영적 지도자라는 것은 정치적이나 문화적이나 어떤 경제적 지도자보다도 제일 큰 사명자이니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쓰는 자를 영적 지도자라 하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는 인간 경제나 문화계, 경제계를 초월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도자가 되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느냐 하는데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장성기의 길 (2:1-10)
영적 지도자는 자라날 때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지 예정이 계심으로 모태로부터 택하되 그 시대를 따라서 나게도 하시고 자라게도 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는, 영적 지도자를 해치려는 박해는 어려서부터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명을 빼앗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다. 그 길은 전화위복이라는 하나님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자라는데 불행스러운 것 같으나 결국은 영적 지도자를 만들기 위하여 불행스러운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
모세는 세상에 나올 때도 원수의 공포 속에서 낳고 자랄 때도 원수의 무서운 정권 아래서 자라나되 하나님의 보호는 항상 같이 했던 것이다. 영적 지도자는 시대적인 혁명을 일으키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원수의 강한 세력 아래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원수의 강한 압박 속에서 장성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라날 때부터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자라나게 하며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해서 기른다는 것이다.
2. 시련의 길 (2:11-25)
영적 지도자는 실패를 당하게 한 후에야 지도자의 자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즉 남을 지도하려면 자기가 어려운 시련을 겪어 보아야만 되기 때문이다. 모세는 애굽의 학술을 배운 인격이었으나 이것으로만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실패를 당케하여 미디안 사십 년의 시련의 길에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세계로 인도했던 것이다.
영적 지도자가 되려 할 때는 인간과는 끊어지도록 만들어 놓는 것은 하나님과만 접촉할 기회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즉 사람에게 박해를 받고 축출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숨어 있지 아니하면 안될 환경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명예와 권리의 영광을 맛보면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로 쓰려는 사람은 세상의 쓴맛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계10:11, 사40:27).
3. 명령을 받는 길 (3:1-8)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를 명령할 때 홀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기대나, 어떤 연구나, 계획을 가질 때가 아니다. 만일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계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인간 지도자는 될 수 있으나 영적 지도자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영적 지도자는 초자연적인 신의 역사 없이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절망, 낙망, 공포 속에서 명령이 나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나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니 인간의 어떤 힘이나 지식이나 세력을 초월한 역사이기 때문에 홀연히 명령이 나리되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하는 명령이다.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일이요, 큰 위험을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이 명령을 받는 자는 목숨을 내걸고 참된 희생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여호와만을 앙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길이다. 실패 같으나 성공이요, 죽는 길 같으나 생명이요, 약한 것 같으나 강한 역사가 일어나는 길이다. 앞으로 전진할 때 그때그때 홀연히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는 길이니 조금도 좌우나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시대가 바뀌어지는 동시에 당신의 영적 활동의 법을 변경시킬 때 영적 지도자를 들어 쓰시는 것이다. 언약 신앙 시대에는 아브라함에게, 율법시대에는 모세에게, 은혜시대에는 그리스도에게, 환난 시대에는 동방의 사람(말세 증인). 이와 같이 쓰시는 것은 지도자 없이는 시대를 개혁시키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에게는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권세를 맡긴다.
3.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 출 3 : 1 - 14 )
우리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에 대한 예언적으로 나타난 역사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역사를 보아서 분명히 알게 되는 동시에 완전한 소망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말씀을 완전히 세우실 적에 행하신 일은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열매가 될 증거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세우신 언약대로 행하시는 신이시다 (6, 출2:24)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한 것은 그들에게 언약을 세운 대로 행하시는 신이라는 것을 뜻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 언약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은 언약대로 복을 받을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말세의 종을 동방 땅 끝의 야곱이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세운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을 종을 가르친 것이다.
완전한 성경을 인간에게 나타내기 전에도 언약하신 말씀대로 행하셨거든 완전한 언약의 말씀을 성경으로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것은 분명한 일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는 동시에 현저히 그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문서가 없이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기록한 문서는 조금이라도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것과 같다.
2. 자기 백성을 고통 중에 건져주시는 신이시다(7~8)
하나님께서는 친 백성을 고통을 당치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요, 고통을 당하되 인간의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는 난관을 당할 때에 홀연히 나타나셔서 건져주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 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요
둘째 : 택한 백성들에게 진실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요
셋째 : 인간 종말에 환란을 당할 백성들에게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당할 적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부르짖는 사람이 된다면 그밖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게 된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려운 고통이 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더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린아이가 배고플 때에는 우는 것밖에는 더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어려운 난관이 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더할 수 없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물밀듯이 내려올 때에 시온의 백성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3. 택한 종과 함께 하시는 신이시다 (11~1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종과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기를 기뻐하시는 신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한 종을 들어 쓰는 일이 없이는 왕국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종과 함께 하시어 그를 들어 쓰시되 그에게 왕권을 주시므로써 승리를 이루게 하는 동시에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영광을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4. 스스로 계신 신이시다 (13~14)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신이시니 그 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순종해야될 피조물 된 사람으로서 조물주가 아닌 신을 공경한다는 것은 주인을 대적하는 종이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된 사람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즉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부르짖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역사가 있을 때에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만민이 알게 되는 열매를 맺게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된다.
시 편
1. 푸른 나무 같은 인격
( 시 1 : 1 - 6 )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자를 푸른 나무 같이 소성케 하여 세계를 정복할 인격을 이루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처음에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작은 데서 큰 데로, 약한데서 강한 데로, 더러운 데서 성결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을 가진 자의 생활을 본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1. 성별된 생활 (1)
신앙이라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사상 정신 마음이 성결하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게 된다. 이것은 억지로가 아니요 사상, 정신, 마음이 그러한 사람이 되었으므로 불의한 일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면 자신이 괴로워서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성별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도덕이 아니요, 완전 성결을 가진 인격에서 이루어진 열매가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악한 자의 꾀에 귀를 기울여 들어 따라 간다든지 그러한 자와 같이 교제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성결의 인격을 소유할 수가 없다. 푸른 나무 같은 인격은 자동적으로 성별된 생활을 하게 된다. 푸른 나무가 아무리 더러운 땅에 섰다 하여도 빛과 향기를 자동적으로 성별되게 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죄가 많은 세상에서라도 물들지 않고 사는 생활이 푸른 나무 같은 인격이다.
2. 묵상의 생활 (2)
누구든지 참된 진리가 마음에 있는 자는 자동적으로 묵상 생활을 많이 하게 된다. 푸른 나무가 소리도 없이 잠잠히 소성 하듯이 진리가 마음에 충만한 자는 진리 안에서 산 체험이 있으므로 그 진리를 묵상할 때에 그 마음에는 항상 진리대로 역사하는 신의 감화가 같이하게 된다. 항상 하나님께로 이런 힘이 오게 될 때에 인간을 초월한 힘의 세계에서 초인간적인 인격으로 나날이 소성하는 미의 세계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3. 형통의 생활 (3)
하나님은 자유의 신이신 동시에 당신을 순종하는 자에게 의를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신이시다. 처음에는 어려운 일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다 순조롭게 되므로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아무리 악마의 세력이 강하게 대적한다 하여도 푸른 나무 같은 인격을 가진 자에게는 피해를 줄 수가 없는 것이다.
4. 인정받는 생활 (4~6)
악한 자는 스스로 자기가 옳다고 하는 자요, 의인은 자기 부족을 느끼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생활을 하는 자이니 이러한 자는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록 역사 하시므로 모든 일에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인격이 아니라면 아무런 열매 없는 인생이 된다. 이러한 자가 아무리 열심으로 일을 한다 하여도 그 일은 결국 심판을 받는 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푸른 나무 같은 인격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왕권의 상급을 받는 열매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조물주 하나님께 인정을 받도록 사는 생활이 있어야만 된다. 산 생명이 있는 나무가 시냇가에 서서 푸른빛을 계속으로 내며 많은 열매를 맺는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생활이라야 나날이 소성해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참된 진리를 주야로 묵상하는 양심을 떠나서는 아무런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인간이라는 것은 기계가 아니고 자유롭게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다. 동물은 큰 차별을 가지게 되는 일이 없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악인과 의인으로 큰 차별을 가지게 된다. 악인이라는 것은 동물보다도 못한 인격이 되고 의인이라는 것은 나날이 소성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영원한 왕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2. 아름답고 영광이 되는 일
( 시 8 : 1 - 9 )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영광을 좋아하는 것은 다 같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일이 아름다운 일이며 어떠한 것이 영광이 되는 일인지를 바로 아는 자는 심히 적다.
어떠한 일이 아름답고 영광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약한 자에게 권능을 주어 이기게 하는 일 (1~2)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볼 때에 어린아이와 같이 약한 자에게 권능을 주어서 원수를 이기게 하여 아름답고 영광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역사 하실 때에도 자신이 약한 자로 나타나서 권능으로 승리하셨고 모든 제자들도 권능을 주어서 승리하게 하시므로써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도 하시고 또는 영광을 받으시기도 하신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인간 자체로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요, 주의 권능이 같이 하므로만 미와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는 인간이 볼 때에 강한 자를 들어서 쓰는 것이요,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볼 때에 어린아이 같이 약한 자에게 권능을 주어서 쓰시는 것이다. 약한 자를 들어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으로서 누구나 당신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들어 쓰시되 말씀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는 인간이 볼 때는 약한 자이며,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자는 인간이 볼 때에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이나 끝이나 꼭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르는 종들도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미약한 사람이지만 권능으로 원수를 이기게 된다.
2. 조물주께서 권고하시는 일 (3~4)
조물주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기뻐하시는 동시에 아름다움과 영광을 위하여 친히 권고하시는 역사를 하신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권고하실 때에 미와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권고하지 않으실 때에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사30:1~5).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고 말씀에 떠는 자는 권고할 때에 극도로 아름다운 영광을 본다는 것을 이사야 66장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권고를 받으려면 마음이 가난한 동시에 심령으로 부족을 통회하고 말씀에 떠는 자가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3. 지극히 낮은 데서 존귀로 관을 쓰게 되는 일 (5~9)
주님께서는 세상에 탄생할 때에도 낮은 자리를 택하셨고 장성할 때도 역사할 때에도 낮은 자리를 택하셨다. 주님께서 낮은 자를 위하여 역사할 때에 죄인의 친구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제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일은 나사렛 목수 예수가 만 왕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높은 데서 낮은 자리로 끝을 맺는다는 것은 화를 받을 일이지만 낮은 데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 끝을 맺는다는 것은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 일은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아름답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때에는 영광을 나타낼 사람을 극도로 낮은 자리에 두고 나중에 존귀로 관을 쓰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지를 인간이 알게 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극도로 높아지게 하는 것이 진리의 원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역사하기 떄문이다. 겸손이라는 것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한다. 어찌할 수가 없어서 낮아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하여 낮은 자리를 택하는 것이 영광을 받을 일이다.
결 론
인간에게 미와 영광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요 이것을 주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이 능력과 권능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약한데서 강자를 이기게 되고 지극히 낮은 데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3. 환난 중에 복된 자가 되자
( 시 34 : 7 - 22 )
서 론
하나님이 종말의 환난 일으키는 것은 악한 자를 땅에서 자취까지 없이하고 의인이 사는 복된 생활의 복된 땅을 기업으로 주고져 하는 종말의 환난이다. 그러면 악인이 세상에서 끊어지는 그 환난에서 복된 자는 어떤 자인가에 대하여 본 성경으로 알 수 있다.
1. 혀를 악에서 금하라 (12-13)
이것은 악한 일이다. 악한 말에 동참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물어도 대답하지 말고 누가 하는 말에 같이 혀를 놀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왜냐할 때에 악인은 자취도 없이 하는 때이니 악한 일에 동참만 해도 죽는다는 것이다(계18:4). 이때는 진노의 날이니 행위로도 안되겠지만 말에도 동참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33장 15절에 귀를 막고 피흘린 꾀를 듣지도 말라고 한 것이다.
2. 입을 궤사한 말에서 금하라 (13)
심판 날에는 거짓말로 남을 해치던 자가 보응을 받을 때니 그런 말에 입술을 같이 놀려도 안된다는 것이다. 누가 와서 남의 말을 할 때 묵묵히 기도할지언정 거기에 동참치 말라는 것이다.
3.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 (14)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라도 악을 버리는 일이 없다면 이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악한 자를 없이하는 환난이니 악을 버리는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랑이라고 해서 악한 사상을 가진 사람과 타협을 갖는 것은 환난 날에 악자와 같이 형벌을 받을 것이다.
4.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4)
화평을 찾으라는 것은 상대편이 아무리 나를 원수시하는 자에게라도 같이 악을 발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화평한 일을 위해서만 따라가라는 것이다. 화평한 일이 아니라면 따라가지 말아야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누구와 당파적인 싸움을 하는데 그 일에 동참한다면 이것은 화평을 찾아 따라가는 길이 아닐 것이다. 이 화평이라는 것은 불의와 화평한 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 동시에 이 일을 중점하여 따라가는 것이다.
결 론
이와 같이 사는 생활이 있는 자라면 아무리 악인이 땅에서 끊어지는 날이라도 여호와께서 그의 호소를 들으시고 저희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또는 중심에 통회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하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살려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고난에서 건지시는 것이다 (16-19).
4. 입으로 범죄치 않는 자의 기도
( 시 39 : 1 - 13 )
하나님은 인생의 기도를 받아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신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생에게 자유를 주고 입으로 범죄가 없이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을 내리어 그 입에 열매가 있게 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라에서 법을 세울 적에 그 헌법을 어기지 않는 신청이라야 헌법적인 접수를 하고 요구대로 준다는 것이 백성을 다스리는 옳은 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소위 죄인이 사는 세상에도 그 정치가 완전한 법에 따라서 시행하거든 하물며 하나님께서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진리 운동에 있어서 입에 진리의 법을 지키지 않고 범죄 하는 자의 기도를 받을 수 없고 범죄치 않는 자의 기도라야 받아 주시는 것이다.
이제 어떠한 자라야 입으로 범죄치 않느냐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행위를 조심하는 자이다 (1)
사람이라는 것은 조심하는 것이 없이 아무 사람 앞에서나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나는 새가 공중을 향하여 날아올라 가지 않고 그물을 찾아 들어간다면 날개가 있어도 그 새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악인 앞에서도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은 그 악인에게 걸려들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말을 조심해서 하여야만 된다는 말이다.
2. 마음이 뜨거운 묵상이 있어야 한다 (2~3)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할 말이 있어도 중심에 깊은 묵상이 있어서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반성해 보는 일이 있어야 한다. 왜냐 하면 사람은 자기의 부족을 모르기 쉬운 인간이므로 내가 이 말을 하므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묵상할 때에 하나님은 그 묵상을 보시고 그 입에 열매가 있도록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3. 인간의 모든 일이 허사라는 것을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5~6)
사람이라는 것은 헛된 일에 동참하여 말하게 된다면 그 말은 다 실수가 되고 말 것이다. 인생이 아무리 인간 방법으로 든든히 선다 하여도 결국은 허사가 되는 것이다. 항상 기도하는 사람은 헛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모든 일을 진행해 나갈 때에 입에 열매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4. 주께만 소망을 두는 자가 되어야 한다 (7~9)
소망을 주님께만 두고 나가는 자가 된다면 모든 일을 주님께서 역사해 주기 때문에 죄에 빠지지 않도록 악인에게 욕을 당하지 않도록 역사해 주시므로 입에 실수가 없이 이기는 자가 되게 하신다.
5. 기도로 승리하게 됨 (10~13)
아무리 징계를 받는 자라도 입으로 범죄 하지 않고 기도할 때에 오히려 악의 세력은 소멸되게 하고 당신의 사람으로서 승리하므로 어려운 일을 당한 것이 오히려 유익이 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완전 승리는 입으로 범죄 하지 않고 기도하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아무리 악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입으로 범죄치 않고 기도하는 사람 앞에 정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완전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인격은 입으로 범죄치 않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시40:1~3에 말했다.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에서 한마디 말씀도 입을 열지 않고,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는 말씀과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심히 목마르다, 나와 같이 낙원에 가리라, 저가 아들이니이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다 이루었다 하는 말씀 외에는 말하지 않으므로 주님의 기도는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제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괴로워도 억울해도 입으로 범죄치 않고 기도한 자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5. 입술로 새노래를 부를 자격
( 시 40 : 1 - 10 )
새 노래라는 것은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속죄 은총을 노래하는 것보다도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참고 나가던 사람으로 자기의 원통함을 하나님이 갚아주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 노래는 억울한 환경을 벗어나는 새로운 역사를 통하여 감사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이니 새 노래를 입술로 부를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 (1)
가장 어려운 일은 억울함을 당하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에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으로만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자체로는 승리할 수 없으나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만이 입술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인격을 이루는 동시에 새 노래를 불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사람이란 완전한 사람은 있을 수 없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응답 하시므로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2. 반석 위게 굳게 서는 자 (2)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끝까지 기다리는 자는 처음에 기가 막힐 웅덩이에 떨어지는 일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끌어 올려주시므로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고 담대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응답을 받으므로만 장부와 같이 굳게 서는 용사가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말로써는 의지하는 것이 쉬운 것 같으나 큰 절망 속에 들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나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이러한 자들은 과연 새 노래를 입술로 부를 수 있는 용사라고 보게 된다.
3.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 (3)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끝까지 기다리고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사람을 구원해 낼 수 있는 종의 자격을 가지게 된다.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요, 새 노래를 부르는 것은 시련 가운데서 끝까지 기다리고 나가던 자들이 원수를 이기게 되므로 새 노래를 인하여 원수가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4. 불의와 타협치 않는 자 (4)
아무리 불의한 자가 교만하고 거짓되게 행한다 하여도 거기에 눌림을 받지 않고 조금도 타협이 없이 나가는 자라야 입술로 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조금도 불의한 자와 타협치 않아야 하나님의 역사가 그 사람을 승리하게 하신다.
5. 주의 법이 마음에 있는 자 (5~8)
아무리 제사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린다 하여도 주의 법이 마음에 없는 자라면 그 예물과 제사는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심중에 주의 법이 있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므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승리에 그 사람을 들어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제사라는 것은 심중에 주의 법이 없이는 아무런 필요가 없고 이미 기록된 말씀 하나만을 중심한 자에게 승리의 열매가 있게되므로 새 노래를 부르게 된다.
6.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 (9~10)
진리라는 것은 자기 마음에 숨겨두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열매가 없는 일이요, 마음에 있는 진리를 널리 전하는 자라야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본다. 진리는 세계를 구원하는 말씀이니 남을 살리기 위하여 널리 전파하는 자라야 승리의 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결 론
새 노래를 입술로 부르는 사람은 완전 승리의 왕권을 받게되는 자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다윗 왕국에 가입될 자는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새 노래를 부르는 인격을 가진 자라고 보게 된다.
6. 낙망 중에서 오히려 찬송하는 자가 되자
( 시 42 : 1 - 8 )
인생이라는 것은 낙망될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 완전이 아니요 낙망될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도우시므로 오히려 찬송하게 되는 일이 완전에 들어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낙망이라는 것은 버림을 당한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목적두고 바로 살아보려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넘어지는 것도 달음박질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요, 상처를 받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있는 거요, 피곤해지는 것도 전력을 다하던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살피실 때에 뛰다 넘어진 자, 열심히 일하다가 상처를 받은 자, 전력을 다하다가 피곤해 쓰러진 자,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돕는 역사를 하시므로 그들에게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제 어떠한 자가 낙망 중에서 오히려 찬송하게 되느냐에 대하여 본문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1. 갈망하던 자 (1~2)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던 자가 낙망을 당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도우신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그 밖의 모든 선지들도 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인데 하나같이 낙망을 당하게 되는 일이 닥쳐 올 때 그들은 오히려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을 통하여 당신이 하실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무정한 인간도 자기를 갈망하는 자에게는 도와줄 마음이 생기는 거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갈망하는 자를 돕기 위해서는 갈망하는 자가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할 때 낙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기가 막히고 앞길이 캄캄할 때에 하나님은 홀연히 나타나므로 오히려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2. 무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던 자에게 (4)
주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시요, 부소 부지하신 신이시니 천하의 만민을 구원하되 낙망하지를 않으시지만 하나님의 종은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므로 많은 사람을 인도하다가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닥쳐올 때에 낙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당할 때에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는 마음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에 뜻밖에 주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오히려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많은 사람이 자기를 지지할 때에 힘이 나고 다 배반할 때에 낙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지만 주님은 택한 종을 그러한 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은 겸손한 종을 만들어 쓰는 모략이라고 보게 된다. 언제나 주께서는 사람에게 배척을 당하고 낙망할 일이 올 때에 원망하지 않고 아주 배반하지 않고 눈물 흘려 기도하는 사람을 불쌍히 보고 축복하시는 것이다.
예수님도 3년간 전도할 때 많은 사람이 물밀 듯 따라왔지만 겟세마네와 골고다를 거칠 때에 한 사람도 따라오지 않고 홀로 걸어갈 때 그 눈물과 그 피는 세계를 살리는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말세의 종은 시련을 거친 후에 오히려 찬송하게 되므로 인정을 받는 종으로서 승리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3. 밤이 맟도록 기도하는 자 (7~8)
기도라는 것은 평안할 때의 기도보다도 어려운 풍랑이 일어나고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그 물결을 거스릴 수 없을 때에 밤을 새워 기도할 때 하나님은 물결치는 파도를 잔잔하게 하는 역사가 있으므로 오히려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려운 난관이 올 때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 외에는 더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밤을 새워 드리는 기도가 없이는 낙망될 일이 올 때 오히려 찬송하는 일이 있게 되지를 않는 것이니 하나님의 사람은 밤에 기지개켜며 잠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앞으로 오는 풍랑을 감히 이기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밤을 새워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고요한 밤을 통하여서 깊은 영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의 큰 체험은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에 있었다는 것을 언제나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밤을 새워 기도할 수 있는 힘은 인간 자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온 힘이라는 것을 분명히 증거하는 바이다.
이 사람이 진리를 깨닫게 된 힘은 빈민굴에서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3일 밤을 계속 밤을 새워 눈물 흘려 기도하던 중에 초인간적인 기도의 힘을 얻어서 10개월간 조금도 자지 않고 계속으로 밤을 새워 기도하던 중에 계시록을 분명히 알려주는 음성을 듣고 받아쓴 것이 오늘에 성경 전체의 진리를 변론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인생으로서 하나님을 찬송할 일은 낙망할 일이 없으므로가 아니고 낙망할 일이 올 때에 하나님의 돕는 은혜로써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므로 신앙이 자라고 영계가 향상된다는 것을 이 사람은 40년간 기도 생활에 체험한 일입니다. 나는 언제나 낙망할 일이 올 때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기뻐하는 바입니다.
7.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할 일
( 시 42 : 8 - 11 )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본이시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은 생명을 받은 자로써 산 기도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할 의무가 사람에게 있고 생명의 하나님께서는 기도대로 이루어줄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난관을 만나게 하고 거기에서 자기에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동시에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를 응답으로 나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원수의 압제가 있을 때에 (8~9)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압제를 인하여 밤을 새워 기도하는 자에게 강한 역사를 나려서 승리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의 압제가 올 때는 하나님의 돕는 은혜가 올 징조이니 압제를 무서워하지 말고 기도하여야 된다. 어찌해서 원수의 압제를 당하게 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담대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둘째 :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기 위하여
셋째 :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깨닫게 하기 위하여 원수의 압제를 통과시키는 것이다.
나는 기도 생활의 산 체험은 원수의 압제 아래서 기도하다가 전부 순서적으로 받게 되었다. 강권으로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기간 안에 생각밖에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은혜를 받겠다고 목적을 둔 것이 아니고 압제를 당할 때에 어찌할 수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는데서 15년이라는 기간에 더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세시간 동안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는 광경이 직접으로 나타났는데 못박았던 자리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뼈가 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려 오며 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뚝 뚝 들려오면서 주님은 내게 직접 말씀하시기를 너를 위하여 이렇게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으로 나를 향하여 물어 보시는 것이었다. 그때에 나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조금도 불평을 두지 않고 그 고난을 달게 받고 나가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약 15년이 지나도록 계속으로 원수의 압제를 받았다. 이 압제는 원수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내 원수가 되어 나를 압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을 당할 때에 조금도 불평을 두지 않고 기도하니 생명의 은혜가 강수같이 내려오는 체험을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심령은 나날이 소성하고 이 몸도 나날이 소성하는 체험을 받게 되어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이 기도는 억지로 하는 것보다도 그 생명의 은혜가 흘러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밤을 세워 기도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을 체험하며 10개월간 조금도 피곤이 없이 철야 기도를 하는 중 계시록을 완전히 알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생명의 하나님께 교통을 받게 되어 얼마든지 기도를 통하여 소성하는 체험을 15년간 받게 될 때에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인 것을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억울하게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일은 생명의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2. 훼방하는 말을 들을 때에 (10)
누구든지 훼방하는 말을 듣고 같이 훼방하는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그 시간에 온전히 훼방하는 사람에게 졌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훼방하는 사람은 이미 마귀의 도구인데 같이 훼방을 한다면 그 사람도 마귀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훼방하는 말을 듣고도 하나님께만 입을 열어 기도할 때에 거기에서 입술에 열매를 맺는 승리가 있게 된다. 우리 주님께서도 아무리 훼방을 하여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상에서 입곱 가지 말씀을 하시므로 완전히 승리하신 것이다.
첫째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둘째 : 이 무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셋째 : 저가 아들이니이다
넷째 : 내가 심히 목마르다
다섯째 : 네가 나와 같이 낙원에 가리라
여섯째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일곱째 : 다 이루었다. 하시는 말씀으로 완전히 승리하시었다.
나의 체험에 의하면 하나님의 종으로써 입술에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훼방하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는 바이다. 내 입에 말씀이 오므로 여러 가지 책자를 계속 발행하게 될 때에 훼방하는 말이 더 많은 것은 훼방하는 사람 자체에 손해가 될지언정 내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다. 오히려 이것이 내게는 큰 축복이 되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큰상을 받는 일은 나를 인하여 너를 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리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와 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하였다. 그러므로 훼방하는 말을 듣고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에게는 더 큰 축복이 오는 것이다.
3. 낙망과 불안한 일이 있을 때에 (11)
기도라는 것은 소망이 보일 때보다도 낙망이 올 때에, 마음이 평안히 있을 때보다도 불안이 올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낙망과 불안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사람이 된다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써 낙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 올 때에 홀연히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당신의 사람으로써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좀 더 강하게 하시어 무슨 일을 당하든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용사적인 인격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결 론
사람이라는 것은 자체에는 아무 것도 없고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 하므로써 원수의 압제를 당하든지 훼방하는 말을 듣든지 낙망과 불안이 닥쳐온다든지 오히려 찬송할 수 있는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8. 진리와 인도
( 시 42 : 9 - 43 : 5 )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를 인도할 때에 진리가 없이 인도하는 일이 없고 먼저 진리를 나타내 보여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으로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범위에 숨어 있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시대적인 진리를 바로 깨닫게 되면 그 진리대로 주의 인도가 같이하고 그 진리를 널리 전할 수 있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동시에 진리로 말미암아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진리와 인도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낙망 속에서 도움을 받게 됨 (9~11)
누구든지 진리를 따라가는 길에는 원수의 비방과 압제가 같이 하므로 낙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 닥쳐오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도움을 진리대로 체험을 받게 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진리라는 것은 언제나 마귀의 자식들에게 압제를 받게 되고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 원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종이나 진리대로 인도를 받게 되는 종에게는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찬송을 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므로 진리의 인도를 따르던 사람이 그 진리를 더 확신하고 그 진리대로 남을 지도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2. 판단 속에서 건져냄을 받게 됨 (43:1)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은 진리대로 판단하는 역사가 있게 될 때에 오히려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건져냄을 받게 된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말씀대로 판단을 내릴 책임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아무리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이 둘러싼다 하여도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건져냄을 받게 된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진리대로 따라가는 자에게 간사하고 불의한 자가 대적을 하게 하면서 판단을 나리는 것은 진리대로 따라가는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3. 연약한 중에서 힘을 얻게 됨 (2)
하나님께서 진리를 따르는 자를 연약한 자리에 버려두시는 것은 당신의 능력으로 역사할 때가 된 증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슬픔 속에서 여호와의 힘은 홀연히 그에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진리를 따르는 사람으로 하나님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이 있게 하시는 것이다.
4. 진리대로 성산에 이르게 됨 (3)
진리라는 것은 성산에 이르기까지에 목적을 두고 약속한 말씀이니 그 진리대로 따라가는 자라면 아무런 환란이 온다 하여도 결국은 성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게 가장 복된 길은 진리대로 인도를 받아 성산에 이르는 것이다. 성산의 축복이라는 것은 받을 자가 심히 적으므로 언제나 망할 자들에게 억울하게 압제를 받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5.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게 됨 (4~5)
지극히 즐거운 일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인도하시되 극도로 즐거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택한 자를 마귀의 자식들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받게 하는 것은 극도로 즐거운 일을 하나님과 같이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귀의 자식들에게 괴로움을 받게 되고 복을 받을 사람도 괴로움을 받게 해서 함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 성산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결 론
진리는 하나님께 있고 사람은 그 진리를 믿는데 진리를 가진 하나님은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 진리대로 인도하고 진리대로 성산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진리대로 인도를 받는 자는 무슨 일이나 처음에는 슬픈 것 같으나 오히려 찬송을 하게 되고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진리대로 인도를 받는 사람이 심히 적고 진리의 대적이 되는 마귀의 인도를 따르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언제나 진리의 인도를 따라는 자가 너희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는 말을 듣게 되는 고독한 생활에서 슬픔을 당하게 되는 것이 망할 세상에서 당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극히 즐거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는 당신의 백성이 영광을 받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9. 주께서 기뻐하는 연고로 승리
( 시 44 : 1 - 8 )
인생의 승리라는 것은 주께서 기뻐하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심히 적다. 우리는 아무리 애써도 주께서 기뻐하지 않으면 허공을 치는 일이 되고 말 것이요, 주께서 기뻐하신다면 조금도 헛된 일이 없이 전부가 다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제 주께서 기뻐하는 연고로 승리하게 되는 일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열방을 이기게 됨 (1~2)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는 소수요 기뻐하지 않는 자는 다수라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꼭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볼 때에는 주께서 기뻐하는 자가 기뻐하지 않는 자들에게 망하는 것 같지만, 주께서 기뻐하지 않는 열방은 다 망하고 기뻐하는 적은 무리를 이기게 한 것은 과거에는 예언이 되고 현재에는 증거가 되고 앞으로는 우리의 소망이 된다.
하나님께서 가장 작은 영토를 택한 백성에게 주고 가장 적은 수로 열방을 이기고 가나안 복지에 다윗 왕국을 세우신 것은 예언적인 선지 국가가 되었고, 작은 나라에서 작은 말구유에 탄생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이 열방을 정복하게 된 것은 우리의 증거가 되며, 앞으로 가련하고 빈핍한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세계를 정복한다는 말씀은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 기뻐하지 않으시느냐 하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 짓게 된다.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나라는 망할 것이고, 아무리 약하다 하여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나라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2. 인간 무력을 초월한 역사로 이기게 됨 (3)
주님께서는 무력을 의지하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무력을 초월한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할 것을 믿고 담대히 싸워 나가는 자에게 역사 하시되 친히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어서 승리케 하여 주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무력으로 남북 통일이 될 것을 믿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오직 여호와의 손이 이 민족 위에 나타나므로만 승리할 것을 믿고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천지 만물 지은 여호와, 우리 위에 나타나서 여호와만이 참 신인줄 알게 하시사 우리의 자랑 되게 하시어 주옵소서. 여호와여 일어나사 우리 나갈 길을 인도하시어 주셔요. 그 큰 권세를 행하시어 할렐루야 영광 하나님께 돌려 줍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호소 성가를 부르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을 자랑할 민족이 될 증거라고 본다. 무력을 의지하는 자는 자기도 그 무력에 죽을 것이로되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할 것을 믿는 자는 반드시 구원함을 얻게 될 것이다.
3. 주께서 기뻐하는 자에게 왕이 되시므로 이기게 됨 (4~5)
우리가 승리하게 되는 것은 주께서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시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느냐, 마귀가 우리의 왕이 되느냐 하는 문제로 승부가 결정된다.
계시록을 보면 붉은 용이 자기의 큰 권세를 붉은 짐승에게 주었다고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말세의 증인에게 그 권세를 주어서 짐승과 싸우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큰 권세를 받은 짐승을 이기려면 주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므로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것을 믿고 용기있게 나가야 한다.
4. 하나님만 자랑하게 되므로 이기게 됨 (6~8)
가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당신의 사람들이 하나님만 자랑하는 일이니, 누구든지 하나님만 자랑하는 자라면 백전 백승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자로 하여금 당신만 자랑할 수 있는 일이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난관을 당하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홀연히 승리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므로만 승리한다는 것을 정치인이나 일반 국민이나 다같이 알게 하여 하나님 앞에 합심 호소 성회를 속히 열어야 한다.
결 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의 승리라는 것은 이제부터 만민이 알도록끔 열매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견고해야 되며, 조금도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있어야 되며, 조금도 타협하지 말고 절개있게 나가야 된다.
10. 환난을 두려워 아니할 인격
( 시 49 : 1 - 8 )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환란을 만나지 않는 인격이 아니요, 환란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격이다. 그러면 어떠한 자가 되어야 환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격이 되느냐는 데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증거한다.
1. 입에 지혜를 말하는 자 (3상반절)
사람의 입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말을 할 때에는 환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요 지혜로운 말을 할 때에는 환란이 온다 하여도 그 환란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혜의 요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요,
둘째 : 악한 자가 감히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말하는 것이요,
셋째 : 많은 사람이 듣고 깨닫도록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에 지혜로운 말이 있는 자는 어려운 난국을 돌파할 인격이 있는 자이다.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자기를 죽게 하는 일도 되고 자기를 살리게 하는 일도 될 뿐만 아니라 남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는 것이다. 지혜를 말하는 자는 남도 살리고 자기도 살게 되는 것이다.
2. 마음에 명철을 묵상하는 자 (3하반절)
마음이라는 것은 그릇과 같은 것이니 명철을 묵상할 때에 점점 밝아지는 것이요, 오해를 품게 될 때에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누구든지 항상 마음에 명철을 묵상하는 자는 어떠한 환란이 와도 살 길이 무엇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밝아지면 얼마든지 앞길을 내다 볼 수 있고 어두워지면 내일의 멸망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최고 가치라는 것은 명철을 묵상할 때에 먼지 나는 땅 위에 앉아 있더라도 하늘의 세계와 교통할 수 있고 비록 작은 사람의 마음이라도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에 충만히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철을 묵상하는 자는 앞길이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3. 오묘한 말을 푸는 인격이다 (4)
사람이라는 것은 무슨 말을 듣고 그 말이 어떠한 뜻에서 한 말인지를 알게 될 때에 미혹을 받지 않게 되고 모든 일이 그 깊은 뜻을 알게 될 때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람이 귀로 듣고 그 오묘한 말을 바로 풀지 못할 때에 멸망을 자취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과거 주님을 따라 가던 대중이 주님이 말씀하신 오묘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당시에 이 사람들은 보리떡을 먹고는 따라 갔지만 예수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은 알아 듣지 못하겠다고 하며 물러가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도 수많은 인간들이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를 못할 때에는 환란에 빠져 후회 막심한 공포, 수치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계시록에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한 것이다. 누구든지 귀로 듣고 오묘한 말을 바로 푸는 자라면 앞으로 오는 환란이 두려울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환란은 완전한 인격을 가진 자에게 큰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4. 재물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6~8)
세상에 제일 가치가 없는 사람은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인격이 재물을 의지한다는 것은 재물보다 못한 인격이고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인격이 재물을 지배하는 자가 될 때에 그 인격은 남을 구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재물을 의지하지 않는 인격이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물질을 초월한 역사를 하게 하신다.
결 론
환란이 오게 되는 동기는 환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격이 되므로 오는 것이니 완전한 인격을 가질 적에 환란이 온다 하여도 환란은 그 인격에 손상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완전한 인격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조건이 되는 것이다.
11. 환난 날에 긍휼 함을 받을 인격
( 시 59 : 16 - 17 )
서 론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시며 시대를 따라서 사람을 불쌍히 보는 긍휼이 있되 환난 날에 특히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는 어떠한 자라는 것을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1. 억울한 피해를 당하게 된 자에게 (1-4)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동시에 사람이 볼 때는 흠이 많고 악평을 받을 만한 형편에 있다 해도 하나님이 볼 때 옳게 보는 사람은 특히 불쌍히 보는 것이다. 요셉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중 생활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다윗이 억울하게 사울에게 시기를 받고 축출을 당할 때 그를 만 왕의 왕조를 삼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당신의 사람이 죄 없이 억울한 사정을 당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불쌍히 보고 더 큰 것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억울하게 악평을 받는 자에게 (5-7)
하나님께서 남에게 공연히 악한 말을 토하며 다니는 인간들을 개라고 말했던 것이다. 개라는 것은 필요없이 분별도 못하고 막 짖는 것을 개라 하는 것이다. 또는 시대적인 분별도 못하고 사람을 분별도 못하는 자를 못 짖는 개라고 말한 것이다(사56:10). 하나님은 이러한 무리들을 긍휼히 볼 수 없다. 억울하게 말을 듣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되는 사람을 특히 불쌍히 보는 것이다. 즉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좋아하는 사람을 간사한 악인이라고 말했다 (9-13).
3. 악한 자에게 저주와 거짓말로 인하여 눌림을 당하던 자에게 (10-13)
하나님은 남을 저주하기를 좋아하고 거짓말하는 자를 향하여 진노하므로 소멸하여 없애는 마지막 환난이니 이러한 가운데 악인들에게 저주를 받을지언정 같이 저주하지 않는 사람을 불쌍히 본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억울한 저주를 받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긍휼 함을 받게 되어 왕권의 영광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4. 식물을 탐하여 욕심으로 하지 않는 자 (15)
우리는 식물을 위하여 사는 생활이 아니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힘입어 환난 날에 피난처를 찾는 사람이니 억울한 물질적 피해를 당할지라도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큰 힘을 믿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물질적으로 억울한 피해가 있다고 해서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그에게는 긍휼 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자는 본문과 같은 악한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것이다.
결 론
우리가 인간의 어떤 피해가 온다 하여도 무서워 말고 낙심하지 말 것이니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요,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억울함을 당하는 종을 향하여 원수를 갚아 주는 일이 없다면 앞으로 환난 날에 의인은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의인이 억울함을 당하는 그 시대에 그 환경에서 특히 긍휼함을 베풀어 준다는 것을 목적한 것이 본문 성경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윗이 사울에게 억울하게 박해를 당할 때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쓴 것이 곧 시편 59편이다. 우리는 다윗왕의 계통적인 왕권을 소유할자로서 다윗이 당했던 어려운 환경에서 긍휼함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12. 환난때 영화롭게 되는 자
( 시 91 : 1 - 16 )
서 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환난이 없음으로가 아니고 어려운 환난이 부딪쳐 올 때에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완전하고도 공의로운 신이시니 환난이 오게 하는 동시에 여기서 의로운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을 당해 보아야 하나님은 당신이 영화롭게 하는 인격을 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환난 중에 영화롭게 할 인격은 어떠한 자라는 것을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1.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통하는 자이다 (시91:1)
하나님은 평안할 때 은밀한 곳을 살핀다. 은밀한 곳을 살필 때는 잠잠히 계셔서 고요히 숨어 계신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 은밀한 곳에서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한다고 한 것이다(계2:23). 지금은 하나님은 고요히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를 살피고 있지만 환난이 올 때는 누가 은밀한 곳에 계신 하나님과 사귀었느냐 하는 문제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다 (2)
하나님은 어느 정도까지 당신을 의뢰하는가를 달아보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 같으나 어려운 일이 올 때 의뢰하는 힘이 약하다면 영화롭게 될 수 없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영화롭게 된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힘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천인 만인이 쓰러지는 염병과 재앙이 와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다고 한 것이다(3-10).
3.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이다 (14)
우리는 하나님을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영화롭게 되고 못되는 것이 달려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있으면서도 부분 적에 불과하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건져 주는 정도에까지 사랑하는 자라야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사랑할 때 건져 주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다 (14)
이 안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증거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높여 주리만큼 안다는 정도가 무엇이냐 라는 것을 양심적으로서 판단할 일이다. 하나님은 양심을 보고 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니 조금도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는 일이 없고 날마다 일구월심의 양심 속에서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여기에서 움직이는 자라면 이 사람은 하나님이 높여 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위신을 높이려고 하는 중심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진실한 체 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악자의 행동일 것이다. 바리새 교인의 행동이 즉 그것이었던 것이다.
5. 간구하는 사람이다 (15)
이 간구는 사생을 결단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되면 되고라는 그 정도가 아니라 “꼭 안되면 나는 죽는 일이다” 라는 각오를 가지고 올리는 기도가 간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영화롭게 해주는 인격이 아니고는 환난 가운데 남을 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환난은 종말에 오는 환난을 말한 것이니 이 환난에서 영화롭게 된 자는 장수함으로 만족하게 되리라고 말한 이것은 육체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영화 중에도 큰 영화는 종말에 환난 가운데 남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13. 주께 징벌을 당하며 교훈을 받는 자의 복
( 시 94 :10 - 23 )
서 론
주님께서는 복 받을 사람을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징벌을 하면서 교훈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망 있는 사람도 장차 성공을 하도록 부모의 징벌이 따라가는 일이 있다. 이와 같이 말세에 큰 축복을 받을 자는 그 교훈을 바로 알아서 축복을 받기까지는 징벌을 나리는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징벌만을 주고 깨닫는 교훈이 없대도 안될 것이요, 교훈만 하고 징벌만 해도 안될 것이다. 이제 징벌을 당하며 교훈을 받을 자의 받을 복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환난 날에 빛이 나게 한다 (13)
우리의 축복은 캄캄한 어두움의 환난이 올 때 광명한 빛이 나를 인도한다면 이것이 축복이다. 우리는 앞으로 불가피한 환난의 흑암을 거칠 것이니 그때 빛과 평안을 소유하려면 징계를 받으며 교훈을 받는 자라야 될 것이다.
2. 절대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 (14)
하나님은 당신의 교훈을 받을 자가 부족이 있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영원한 기쁨을 얻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교훈대로 할 책임은 가르친 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전해지므로 환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고 환난 가운데 버리지 아니하므로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3. 그를 위하여 악자를 치신다 (15-16)
하나님께서도 악자가 교훈을 받는 사람을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싸워 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싸워 주는 일이 없다면 아무리 교훈을 받은 자라도 악자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4. 미끄러져도 붙들어 주신다 (17-18)
우리는 신이 아니요, 육을 가진 사람이니 아무리 바른 길을 간대도 미끄러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누가 말하기를 나는 절대 미끄러져 넘어져 본 일이 없다는 사람은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교훈을 따라가는 사람을 미끄러질까 봐 넘어질까 봐 항상 붙들어 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떤 친구가 길을 가다가 한 친구가 넘어져도 잘 되었다 하며 보고만 있다면 이것은 친구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방관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5. 주의 위안이 영혼을 즐겁게 한다 (19)
사람은 시험이 많을 때 주님께로 오는 위안이 없이는 영적 생활을 보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교훈을 받을 자의 영혼을 주께서는 항상 위안을 주고 즐겁게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6. 피난처가 되신다 (20-23)
여호와는 아무리 악한 자들이 잔해를 도모하고 재판장이 아무리 의인의 영혼을 치려고 하되 여호와 하나님은 악자에게 피해 당하지 않도록 항상 보호하는 피난처가 된다(23). 하나님의 교훈은 사람이 네가 지키라 하는 교훈이 아니고 내가 이렇게 너를 해줄 테니 너는 이 교훈에 순종하라는 것이니 교훈을 달게 받는 자는 끝까지 보호해서 안식의 시대를 정복하게 할 책임이 있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우리는 덮어놓고 복을 받겠다는 것은 세계 인류가 다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길을 취해야만 축복 받는다는 것을 아는 자는 심히 적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 중에도 이 길을 바로 아는 자가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님의 교훈과 징계도 모르고 사는 자도 있고, 징계를 받으면서 교훈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도 있으며, 교훈을 받기 위해서 징계도 달게 받는 자도 있으니 우리의 취할 길은 징계도 교훈도 달게 받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14. 성도의 고난과 기도
( 시 102 : 1 - 28 )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억울한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은 그를 통하여 영원한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란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제 고난 당하는 성도의 기도에 대하여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괴로운 날 내 기도 (1~11)
성도의 괴로움이라는 것은 극도로 심령의 피곤이 올 때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영적으로 피곤이 오게 하고 원수에게 훼방 거리가 되게 하고 눈물로써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극도로 심령의 곤핍을 느끼게 될 때 자기 약점을 깨닫게 되고 억울하게 훼방을 받고 괴로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괴로운 날을 통과시키는 것은 더욱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것과 더욱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심정에서 괴로운 날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2. 영원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심 (12~14)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시는 긍휼과 자비의 은총은 영원한 것으로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괴로운 날에 부르짖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영원한 왕권으로서 주는 은총이 있기 떄문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영원히 그 종에게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시험이 없이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택한 자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것은 고난의 날을 통과한 후에야 있기 때문이다.
3. 세계 통일의 역사를 하게 된다 (15~22)
주님께서도 고난의 날을 통과하시므로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의 자체가 되셨고 사도들도 고난을 통과하므로 세계적인 열방에 전파될 복음을 기록하게 되었고 말세에도 고난을 통과한 자라야 세계적인 통일의 완전 역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고난을 통과한 종에게 세계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왕권을 주기 때문이다.
4.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된다 (23~28)
고난의 날에 응답을 받는 종을 통하여 영원한 왕권을 받는 동시에 그 자손은 영원히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변화성도를 통하여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영원한 축복을 자손까지 받을 종에게는 누구보다도 시련이 많고 공연히 사람에게 훼방을 받고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고난 가운데 기도로 승리한 종의 자손이라고 보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 사명 동지들이여! 본문 성경을 읽어서 큰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내게 쓰라린 고통을 주시는 것을 원망치 않겠나이다. 내가 아무리 괴롭다한들 주의 십자가에 비할 수 있사오리까. 할렐루야로 영광을 돌려서 감사할 일은 영원한 왕권과 내 자손의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을 감사할 것 뿐이로소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고난 없이 응답하지 않고 응답이 없이 긍휼이 없고 긍휼이 없이 영원한 축복이 없다. 그러므로 시편 102편은 시련 받는 종이 세계를 통일하는 왕권을 받고 그 자손이 영원히 왕족으로 축복 받을 것을 두고 가르친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15. 여호와의 말씀이 응하는 길
( 시 105 : 10 - 25 )
서 론
여호와의 말씀이 응하는 길은 어떠한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진리 하에서 똑똑히 배워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느냐 하면 그들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이루어 주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천신만고의 어려움이 와도 따라가는 신앙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이제 여호와의 말씀이 응하는 길은 무엇이냐 하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유리하는 길이다 (12-1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운 후에 그를 인도할 때 정처 없는 객지 생활로 유리하는 생활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네가 나의 말을 순종하느냐 아니하느냐 하는 것을 먼저 시험해 보는 인도였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리라”고 언약을 하시고 그를 인도할 때 억울한 고생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성지를 얻는 길은 정처없이 고향을 떠나서 가던 중 모리아 상수리나무 아래서 홀연히 하나님께서 나타나 성지를 너에게 준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복을 누린 것이 아니고 흉년을 만나 애굽으로 갔던 것이다. 불행스럽게도 애굽에 가서 아내까지 잃어버리는 비참한 광경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 중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표적을 나타내어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사라를 빼앗아 준 일도 있게 되었다. 그때 그는 분명히 하나님은 자기와 같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성지를 떠나 외국으로 가도 그는 하나님이 어디서나 같이 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란 인간이 볼 때 불행스러운 일 같으나 하나님은 나를 도우신다는 것을 굳게 믿도록 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2. 극도로 원통한 일도 당하게 된다 (16-17)
아브라함은 나이 백세에 이삭을 낳아서 하나님께 바치된 일이 있게 된 것도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한 일같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서 아브라함은 큰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 두 아들을 낳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말씀이 응하기 위하여 요셉을 억울하게 애굽으로 팔리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네 민족이 반드시 이방의 객이 되어 사백 삼십 년만에 돌아옴으로 이 성지에서 복을 누린다는 예언이 응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억울한 시기와 쫓겨남을 당해도 가는 길은 하나님 말씀이 응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는 심히 적을 것이다.
3.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도 있었다 (18)
요셉은 억울하게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고랑을 차고 사슬에 매여 옥중생활의 슬픈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억울한 사정을 당하지 않고는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니 옥중생활이 있으므로 그의 길이 열려지는 숨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은 실패 같고 죽는 길 같으나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4. 홀연히 해방을 받음 (20)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은 죽는 길 같으나 오히려 더 유리한 길이 열려지는 일도 있는 것이다. 요셉이 옥중에 들어갔다가 기적적으로 해방을 받는 일은 열방의 통치자가 되는 자유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길은 인간이 어떤 연구 예산 기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기대 밖에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모르는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양심이 맑은 자라면 하나님은 책임지고 말씀이 응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5. 무서운 재앙도 이루어지는 일이다 (21-22)
일곱해 동안 곡식을 하나도 거두지 못하는 흉년이 온 것은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비참한 재앙이 없었던들 야곱의 십이 지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의 객이 되게 하기 위하여 무서운 재앙이 왔던 것이다.
6. 번성하게 되는 일 (23-24)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과정은 뜻밖에 번성하고 갑자기 강해지는 일도 있다. 이들은 굶어 죽는 기근이 무서워 얻어먹는 사람의 하나로 갔지만 큰 축복을 받아 칠십 여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육십만 명이란 대중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흥소흥망이 전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결 론
우리의 신앙정도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덮어놓고 잘된다고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양을 인도하는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 가는 길이 돌밭 또는 가시밭 높은 언덕과 구덩이를 통과하는 것과 같이 주님의 인도하는 길은 요셉이 애굽으로 내려간 일까지 보더라도 넉넉히 험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예지 예정이 계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길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원망, 낙심, 공포가 있다면 아브라함의 신앙은 아닐 것이다. 신앙의 완전한 체험이란 어떤 기사 이적이 아니고 실천 생활에서 말씀이 이루어지는 증거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을 아브라함의 신앙노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16. 여호와께서는 인자한 신이시다.
( 시 118 : 1 - 7 )
하나님께서는 무소 불능하신 동시에 완전한 것을 가지고 계신 신이시다. 그러므로 이것을 주기 위해서는 항상 인자하게 사람을 대하시는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약하고 어리석고 부정한 것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을 향하여 항상 인자하신 신이시다.
이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모든 일을 인자하게 행하신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택한 자에게 (1~3)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택한 자에게 항상 인자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한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아무리 택한 자가 죄 아래 있다 하여도 불쌍히 보고 그를 찾으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부모가 자기의 자녀를 대할 때에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항상 중심에 염려하고 근심하면서까지 그가 바로 되기를 바라는 심정과 같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모태로부터 택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항상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버리지도 않으시고 잊지도 않으시고, 마귀에게 빼앗기지도 않으신다. 아무리 택한 자가 하나님을 떠났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를 찾아가고, 아무리 택한 자가 어리석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를 지혜롭게 하기를 원하시고, 아무리 택한 자가 약하다 하여도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을 주기 원하시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모든 것을 택한 자에게 주기로 뜻했기 때문이다.
2. 경외하는 자에게 (4)
하나님께서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항상 인자하게 대하신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만 아는 죄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고백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기쁘시게 대하시는 것이다. 왜냐 하면 정직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숨기고 예배하는 자는 가증히 보실 것이로되 하나님을 대할 때마다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이 있는 자는 인자하게 대하시면서 그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숨기는 자는 마음이 강퍅해질 것이로되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통회하는 자라면 마음에 성결함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살피실 때에 완전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을 중심으로 경외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3.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5)
하나님께서는 평안한 가운데서 당신을 향하여 마음이 식어진 자 보다도 고통을 당하면서도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을 내리신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할까 무서워서 원수와 타협을 한다면 하나님의 대적이 될 것이로되 원수에게 고통을 당하면서도 타협치 않고 하나님을 찾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충성된 자라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사람에게 아무런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고 고통을 당할 때에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을 내리시므로써 당신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인간이 알도록끔 역사하신다.
4. 하나님 편에 속한 자에게 (6~7)
누구든지 아무리 가난하고 약하더라도 항상 그 마음이 하나님 편에 속해 있는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돕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그 마음이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고 다른 것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향하여 역사를 나릴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승리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항상 인자하시게 대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한 자라면 조금도 마음에 태만한 것이 있을 수 없고 항상 그의 인자하심을 사모하게 되며 그를 가까이 하게 되며 그를 의지하게 되며 그를 따라 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공경한지 40년이 되는 오늘날, 하나님은 인자하시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될 때에 이전보다도 더욱 더 사모하게 된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서든지 이러한 인자를 맛보지 못했고, 하나님께로서만 그 인자하심을 맛보게 될 때에 날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잠잠히 묵상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는 항상 인자하시게 대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야만 한다.
17.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의 승리
( 시 118 : 5 - 24 )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의 신이시지만 덮어놓고 역사하는 신은 아니시다. 반드시 고통이 있게 하고 고통 중에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역사하는 능력의 신이시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고통 중에서 부르짖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제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오는 승리에 대하여 본문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1. 여호와는 이러한 자의 편이 되신다 (5~7)
우리는 고통을 주는 사람이 하나님 편이냐 고통을 받는 자가 하나님 편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라면 이것은 하나님 편이 아닌 것이니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돕는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꼭 같이 역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던 바로는 망하였고 이스라엘은 승리한 데서부터,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로마, 소련 이 7대 강국은 다 거룩한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하는 나라로서 한 때는 강국의 기세를 날렸지만 과거나 미래나 다 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사람에게 고통이 올 때는 하나님이 싸워줄 때가 온 증거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원수를 끊어 버리심 (8~12)
하나님께서 원수의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택한 백성을 괴롭히게 하는 것은 그 원수를 끊어버릴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과거의 역사를 본다면 강대한 나라가 망할 때는 다 택한 백성을 괴롭히다가 망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북방 세력이 성도를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이 북방 세력을 끊어 버릴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볼 때에 극도로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힐 때는 여호와 일어나서 그 원수 세력을 끊어버리고 성도의 나라가 오게 한다고 예언한 것이다. 애굽도 처음에는 이스라엘을 환영했으나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망했고 그 밖에의 모든 나라도 하나같이 망할 때는 다 성도를 괴롭히다가 망한 것이다. 금일에 소련도 처음에는 기독교 종교국이었으나 성도를 괴롭히는 정치를 하게 된 것은 망할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3. 여호와의 오른 손이 권능을 베푸심 (13~17)
하나님의 권능의 손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기 위한 목적이니 여호와 권능이라는 것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홀연히 나타나서 그 일을 모든 사람이 다 알도록 선포를 시키는 것이다. 과거에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에게 권능이 나타난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게 한 것은 그와 같이 종말에도 행하시겠다는 표적이 되는 것이다.
4. 응답으로 구원하심 (18~24)
구원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자리에서 받게 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와도 하나님의 구원은 홀연히 나타나서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고통을 당할 때에 부르짖는 자가 된다면 인간의 할 일은 그것으로 끝이요, 그 밖에는 여호와께서 행하시므로 만이 된다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약하고 어리석고 궁핍한 자리에 있다 하여도 고통이 올 때에 부르짖는 힘만 가진 자라면 완전 승리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이 오는 것은 완전 승리를 이루는 요소의 하나인 것을 알고 고통이 올 때에 더 단결하고 더 강하여지고 더 각성을 받고 부르짖는 단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의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에 여러 가지 난제가 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가 나타날 때가 온 증거인 줄 알고 강하게 부르짖는 용사들이 금년부터 나타나야 할 것이다. 모든 성경에 동방 땅 끝에 부르짖는 역사는 새 시대를 이룬다고 한 것이니 지금 고통을 면할 수 없는 난국이 온 것은 머릿돌 되신 예수님이 나타날 때가 온 증거라고 보게 된다. 고통 중에 부르짖는 자가 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변치 않아야 할 것,
둘째는 원수를 두려워말고 타협치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할 것을 믿는 신앙에서 강하게 부르짖는 힘을 내어야 할 것,
셋째는 조금도 후퇴하지 말고 전진의 걸음을 걸어 나갈 때에 고통이 지나고 완전 평화의 나라가 영원히 이루어질 것이니 잠깐 동안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영원한 왕권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8. 하나님의 백성의 삼대 축복
( 시 144 : 12 - 15 )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완전한 축복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인 동시에 언약의 말씀이요, 약속의 말씀인 동시에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는 축복을 요구하는 것보다도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가 더 급선 문제일 것이다. 하나님은 참되시니 말씀한 대로 축복을 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세 가지 축복을 본문 성경에서 알 수 있다.
1. 자녀 축복 (12)
우리 말세의 축복은 자녀의 축복을 큰 축복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같이 많으리라”고 한 것 같이 말세 종에게도 자녀의 축복을 준다(사49:18-20)고 했고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게 말하기를 이곳이 좁으니 넓혀서 우리에게 거처하게 하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특히 자녀의 축복을 받기 위한 시련 속에서 고난 중에 이삭을 통하여 축복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종된 자로서 자녀에 대하여 큰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죽어 천당을 목적함보다 새시대 건설을 목적한 말세 사명자니 시련을 받을 때 여기에서 자녀가 축복 받을 일이 온다는 것은 아브라함 같이 믿어야 한다. 우리는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 심정을 가지는 동시에 자녀에게 축복을 빌어 줄 수 잇는 자격을 잃지 아니해야 한다.
2. 물질의 축복 (13)
하나님의 종이 물질 중심에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물질을 하늘 나라를 위하여 쌓을 수 있다면 축복 중에 축복이 될 것이다. 말세의 하나님의 종은 특히 기근의 날에도 물질의 축복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사65:13절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물질이 명백하여 물질에 치우치는 일이 없이 될 때 축복이 나린다.
하나님의 종이 물질에 애착심이 있으면 있던 물질도 거두어 간다는 것이다(시113:3-9). 물질을 죄악으로 본다는 것도 탈선이요, 무엇이나 정욕으로 치우치는 것 외에는 그 물질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종이 물질이 많을수록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이 종을 통해서 하나님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3. 원수가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일 (14)
하나님의 집에 악당의 피해를 당한다는 것은 징계의 채찍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부패할 때 악한 나라를 들어 쓴 것도 징계이지만 하나님의 종의 집에 악자가 피해를 준다는 것은 축복 받는 자에게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천사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시34:7, 시91:9-10).
결 론
우리는 이와 같은 축복을 받으려면 다윗과 같은 신앙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다. 산 깊은 목장에서 홀로 부친의 양떼를 지킬 때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작은 양 한 마리를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또한 민족과 하나님의 대적을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동역자의 억울한 박해를 당하나 끝까지 기름 부은 종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심정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이와 같은 종이라면 삼대 축복은 필연코 있을 것이다.
잠 언
( 잠 1 : 20 - 30 )
서 론
하나님은 재앙을 주기를 기뻐하지 않고 복을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향하여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는 것은 재앙의 날에 재앙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택한자를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여 재앙의 날에 남은자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이 아끼는 심정에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어찌하여 재앙을 받게 되느냐 하는데 대하여 본 성경을 보아서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지식을 미워하는 일 (20-22)
하나님의 지식에 따라서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는 자를 말한다. 이 지식이란 장차 이렇게 하면 살고 저렇게 하면 죽는다는 교훈을 가르친 것이다. 사람이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나 또는 바른 길을 가 보려는 마음이 있는 자는 절대 재앙을 받지 않도록 알게 하고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을 미워하는 것은 재앙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찾아보려는 마음조차 없는 것이다. 실지 말씀에 떠는 자를 미워하고 쫓아내는 일도 있다. 믿으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지식을 등한히 하는 일을 말한 것이다.
2. 하나님의 인도를 요구치 않는 일 (23-24)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달라는 사람에게는 인도할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 불러도 듣기도 싫어하고 손짓을 해도 돌아오기를 싫어하는 자는 재앙의 날에 재앙을 면치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참된 양의 심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은 바리새 교인을 향하여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따라오지도 아니하니 내 양이 아니라고 했던 것이다.
3. 책망을 받지 아니하는 일 (25-26)
우리는 하나님이 징계하고 책망하는 것을 달게 받는 자는 아무리 부족함이 있다 하여도 절대로 재앙을 받지 아니하되 책망하는 교훈이나 설교를 듣기 싫어하는 자는 재앙을 받아도 하나님은 웃으신다는 것이다.
4. 재앙이 올 때에 부르짖는 자 (27-28)
이것은 멸망 받을 악한 인간들의 하는 짓이다. 옛날 노아 때도 그러하였고 주님 재림시에는 모든 사람이 통곡한다고 했다(계18:10, 계6:15-17).
결 론
하나님은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게 하는 하나님이시다.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는 것이고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고 하셨다(31-33). 인생이 재앙의 날에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듣기만 하면 재앙을 받지 않고 평안히 살려주겠다는 말을 듣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재앙 받는 것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재앙을 면케 해 주마 하는 말씀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책임을 질 수가 없고 오히려 웃으신다고 말씀 하셨다.
2.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요소
( 잠 2 : 1 - 12 )
인생이라는 것은 동물 세계에서 사는 동물이 아니요 동물 세계에서 사는 영물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온전한 인격을 이룰 때에 옳은 지도자가 되고 이루지 못할 때에 만물의 종이 되는 타락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람이 온전함을 이루는 요소는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게 된다.
1. 계명을 간직할 것 (1)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온전한 인격을 주기 위하여 주신 것이니 그 계명을 항상 간직할 때 하나님의 신이 같이 하고 그 계명을 떠날 때에 하나님의 신은 떠나게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고 완전한 계명을 간직할 때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의 신은 역사하는 것이다.
2. 귀를 지혜에 기울여야 한다 (2상반절)
사람이라는 것은 동물과 같이 입으로 먹는 것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귀로 지혜로운 말씀을 들을 적에 그 지혜라는 것은 영원히 내게서 역사하는 인격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이라는 것은 지혜로운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나 사람은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인격을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
3. 마음을 명철에 두어야 한다 (2하반절)
마음은 명철이 있을 때에 밝아지는 것이요 밝아진 마음이 있어야 광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신령한 눈이니 명철을 받은 자는 마음의 위치를 밝은데 두었으므로 영적 활동의 새로운 발전이 항상 있게 된다.
4. 지식을 구해야 된다 (3~4)
사람이라는 것은 지식을 구하는 것이 있으므로 날마다 발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은, 금만 구하고 지식을 구하지 않는다면 은, 금을 가졌다 하더라도 바로 사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식이 높으면 인격이 높고 지식이 낮으면 인격이 낮고 지식이 없으면 사람의 인격을 상실하고 동물에 불과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온 지식을 말한다.
5. 하나님을 경외하며 알게 되므로 (5~6)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바로 가지게 될 때에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을 바로 알므로 말미암아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인정하리만큼 경외할 때는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이 되도록 그 사람의 입을 사용해서 역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6. 행실이 완전한 자가 될 것 (7)
인생이라는 것은 행실이 완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언제나 방패가 되어 계시므로 원수의 피해를 당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되는데는 하나님께서 싸워줄 인격이 되어야만 승리하게 될 것이다.
7. 하나님의 보호가 있으므로 보존하게 됨 (8~12)
인생이라는 것은 어리석고 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할 때에 걸어가는 길에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하나님은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보호를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요, 보호를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해 주신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 가르친 온전한 인격을 이루는 일곱 가지 요소라는 것이다.
결 론
인생이라는 것은 온전한 인격을 이루는 요소가 있으므로 인생의 가치를 발휘하게 되고 또는 여호와 영광을 나타내는 대 승리가 있게 되는 것이다.
3. 지혜와 지식을 간구하는 자가 되자
( 잠 2 : 1 - 22 )
서 론
인생의 최고의 목적은 지혜와 지식을 간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로 오는 지혜와 지식을 요구치 않고 딴 것을 구하는 것은 정욕으로 흐르는 요구가 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구하는 것 이외의 것을 더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혜와 지식을 감추인 보화보다도 더 귀하게 아는 심정에서 소리 높여 부르짖는 자는 여호와께서 무엇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을 본문 성경에서 알 수 있다.
1.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된다 (5)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지혜와 지식이 될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다 해도 지혜와 지식을 바로 받지 못한 자는 오히려 더 악한 행동을 할 수도 있게 된다(요16:1-3). 그러므로 주님은 바리새 교인보고 너희가 안다 하기 때문에 오히려 죄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요8:41). 하나님은 당신을 알게 해 주는데는 지혜를 주며 지식을 준다는 것이다.
2. 그 길을 보호하시며 보전하신다 (8-9)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도 못하고 덮어놓고 나를 보호하사... 한다는 것은 미신에 가까운 행동이 될 것이다. 우리가 보호를 구치 않아도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이 될 때 뜻밖에 일이 나타나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요셉은 자기가 총리대신이 될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은 우리의 기대를 어긋나게 함도 아니요 이루어짐도 아니다. 우리의 기대밖에 보호와 보전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부를 많이 한 훌륭한 아들을 사모하고 보호함과 같다.
3. 영혼을 즐겁게 한다(10-11)
아무리 은과 금이 쌓였더라도 지혜와 지식이 없는 영혼은 심령의 평화와 즐거움을 소유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란 물질에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 악한 자를 이기게 된다 (12-16)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나 더러운 음녀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있어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악한 사람에게 미혹을 당하지 않도록 건져 준다는 것이다.
5. 땅을 정복하는 자가 된다 (21-22)
세계의 땅을 정복하려는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자가 완전한 사람일 것이다. 즉 악한자와 궤휼자를 없애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결 론
우리는 인격적인 신앙을 가져야 하는데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혜와 지식이 있어야 된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에게 감동감화한 성령은 말세에 남은자가 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본문에 기록케 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되 덮어놓고 무엇이든지 주겠다는 것보다도 먼저 지혜와 지식을 구하면 하나님은 다 책임지고 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의 하나이다.
4. 지혜를 진주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이 되자
( 잠 8 : 11 - 21 )
가장 가치있는 생활은 지혜를 진주보다도 낫게 여기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쳤다. 사람이 물질을 따른다는 것은 물질의 종이 될 것이고, 세력을 따른다는 것은 세력의 종이 될 것이로되, 지혜를 따르는 자는 지혜로운 종이 될 것이다.
이제 지혜를 진주보다도 낫게 여기는 자의 생활 가치를 본문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1. 참된 지식을 얻게 된다 (11~12)
지식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지식이 있어도 지식을 악한 자의 도구로 쓰는 지식도 있고, 지혜로운 자가 얻는 지식도 있으니 과학적인 세상 지식은 망할 자도 가지는 것이로되, 참된 진리를 바로 아는 지식은 지혜로운 자만이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지식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라고 사11:9에 말씀했다.
금일에 유물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물체가 움직이는 힘을 신과 같이 생각하며 이것을 과학적으로 바로 사용하는 것만이 참 진리고, 그 밖에는 다 미신이라고 하는 현실 사회가 된다는 것은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사치와 음란의 도성은 바벨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라야 조물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므로 모든 활동은 완전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면 그 종교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것을 롬10:1~2에 말했다. 사람이라는 것은 참된 지식을 얻은 자가 아니고는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
2. 능력이 있게 된다 (13~15)
능력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니 이것은 지혜를 받은 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할 때에 하나님은 모든 열왕을 통치할 능력을 주었던 것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지혜를 따라오는 것이니 아무리 정권이 있다해도 지혜가 없는 정권은 아무런 힘을 발휘치 못할 것이다.
3. 옳은 판단을 내리게 된다 (16)
사람이라는 것은 옳은 판단을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 주시므로 가장 영화로운 왕이 되었던 것이다. 인생에 가장 무가치한 일이 판단할 줄 모르는데 있고, 가장 가치있는 일이 옳게 판단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 땅에 모든 사람은 다 옳은 판단을 하는 자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못한 원인이다. 심지어 주의 종이란 자들이 사28:7과 같이 재판할 때에 실수하므로 더러운 것이 가득한 행동을 하게 된다.
예루살렘 거리에 왕래하는 소위 제사장의 무리가 옳은 재판을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바알세불이라고 판단하므로 예루살렘은 황폐화되고 만 것이다. 실패 중에 큰 실패는 하나님의 종이 옳은 판단을 못하는 일이라고 본다.
4. 사랑을 입게 된다 (17)
솔로몬이 지혜를 받으므로 누구든지 그를 사랑해주므로, 사랑을 입고 최고의 행복된 왕이 되었던 것이다. 억지로 남을 지배하려는 자는 침략자이로되 지혜를 받은 자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숭배를 받는 것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지도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도자가 지도를 받는 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지도자는 무가치한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
5. 부귀가 있게 된다 (18)
부귀라는 것은 지혜로운 자에게 필연코 따라오는 열매이다. 사람이 물질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요, 지혜를 받으므로 부귀가 따라 온다는 것은 과연 가치가 있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에게 부귀를 주는 것을 기뻐하시는 신이시다. 가장 이 땅에 부귀와 영화를 누릴 자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들어가는 자라고 보게 된다.
6. 의롭고 공평한 길을 걷게 된다 (19~21)
물질 자체가 죄가 아니요, 물질을 바로 쓰지 못하는 것이 죄다. 그러므로 지혜를 받은 자가 부귀를 누릴 때에 가장 의롭고도 공평한 길을 행하면서 그 부귀를 누리므로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신 것은 의와 공평의 길을 걸어가면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인데 사람이 의와 공평을 떠나서 부자가 빈민을 압박할 때에 그것은 오히려 그 물질로 말미암아 큰 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복되고도 영화로운 일은 지혜를 진주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알게 된다. 우리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완전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할 책임이 있다. 지혜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약1:5).
5. 지혜로 낙을 삼는 자가 되자
( 잠 10 : 23 )
인간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받은 인격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들이 무엇이 즐거운 일인 줄 모르고 이리저리 끌리는 생활에서 방황하는 것은 지혜로 즐거움을 삼는 생활이 못되는 원인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 즐거움을 삼는 생활을 할 때에 지혜를 주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생활로 들어가게 된다.
이제 지혜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의 그 가치를 성서를 통하여서 알 수 있다.
1. 통치권을 가지게 된다 (왕상3:9~13)
무력으로 통치하려는 자는 야수적인 인격이요, 자기의 권리로써 통치하려는 자는 한 우상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이로되 지혜를 받아 통치하는 자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것이다. 솔로몬이 비록 어린 소년이지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므로 역사적인 훌륭한 통치자가 된 것은 앞으로 예언적인 역사라고 본다.
지금 인류 종말에 세계 통일은 완전한 지혜를 받은 자가 되어야 된다고 사11:1이하에 가르쳤다. 지금 과학적 지혜와 지식을 자랑하는 것은 오히려 심판의 대상자가 된다고 본다(옵1:8).
인생의 최고 인격은 하나님의 지혜를 즐거워하는 자라고 보게 된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 시대 시대에 대표적인 사람에게 초인간적인 지혜를 주어서 그 시대를 좌우할 수 있는 지도자를 삼은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자 같으나 지혜를 주어서 쓸 때에 하나님을 자랑하는 일이 있게 된 것이다.
2. 미래의 비밀을 바로 알게 되므로 많은 사람을 바로 가르칠 수 있다 (단12:3, 10, 11:35)
가장 인간 중에도 열매를 많이 맺을 자는 종말의 진리를 바로 알아서 가르치는 자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앞으로 살길은 종말의 비밀을 바로 알아서 가르치는 종이 아니고는 남을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날까지는 인간 지혜를 가진 자도 일시적인 지도자의 생활을 했지만 진노의 날이 올 때는 다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 것이다(사19:11~12).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를 즐거워해야 할 때는 이 때라고 본다. 그러므로 지혜를 받은 다니엘은 인간 종말의 환란은 북방으로 오는데 그 세력은 궤휼적이며 침략적이며 무신론적이며 최후 발악적인 행동을 하다가 망할 것을 말하면서 그때에 지혜로운 자가 비밀을 알고 북방 세력에게 피해를 당치 않고 많은 사람을 옳은 곳으로 인도하므로 별과 같이 빛나는 자가 된다고 말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 지혜로운 종으로 때를 따라 그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자에게는 모든 소유를 다 맡긴다고 한 것을 보면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지혜를 받아 종말의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3. 완전 승리의 열매를 맺게 됨 (사11:3~5)
어리석은 북방 세력은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지혜로 국경이 넓어졌고 모든 재물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예를 들면 도끼로 나무를 찍을 적에 도끼가 자기가 힘이 있다고 자랑하는 것과 일반이라고 말했다(사10:12~15).
금일에 잠깐동안 북방 세력을 들어서 부패한 세상을 치는 환란이 오게 할 때에 북방 세력은 자기네가 세계를 통일한다고 떠들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자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의 신을 받은 종을 통하여 원수의 세력을 몽땅 없이할 것을 11장에 가르쳐 주는 동시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통일된 새 시대가 올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악의 세력을 들어 쓸 적에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이 없다고까지 하는 자리에 들어가도록 하였다가 홀연히 여호와 나타날 때에 지혜로운 자가 승리하게 하는 것이다(미7:10). 앞으로 가장 강하고도 위대한 인격은 하늘의 지혜를 받은 자로서 완전 승리를 이루므로 이 땅은 다시 전쟁이 없는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결 론
인간의 최후의 미와 인격은 지혜를 즐거워하는 생활에 있다고 본다. 왜냐 하면 지혜라는 것은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혜를 주어 자기의 비밀을 알게도 하고 또는 주권을 주기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지혜를 받은 자 밖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일을 순종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한 신이시니 작은 인생을 들어 쓸 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니 우리 사람은 지혜를 즐거워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 순종하는 것 뿐이요, 그 밖에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이다.